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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 억취소악(憶吹簫樂)의 함정

2019-06-19기사 편집 2019-06-19 08: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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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정관성 복지재단 대표이사
최근 정치권에서는 억취소악(憶吹簫樂)이라는 말로 상대 정당을 공박하는 일이 있었다. 제대로 진위를 따져보지 않고 자기가 아는 대로 어림잡아 추측한다는 의미의 말이다. 자신의 경험 안에서 전후좌우를 살펴 생각을 조합하고 판단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일수도 있다. 그러나 억취소악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할 책임 있는 엘리트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반 대중과 다르게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억취소악에 더욱 신중하고 예민해야 한다.

보통의 평범한 일반인은 자신의 가족이 아닌 타인의 삶이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인의 언행에 주목하고, 교수의 말을 신뢰하며, 언론인의 비평에 균형 있는 정치사회적 견해를 견지하고자 귀 기울인다. 그만큼 이들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은 크다. 그러나 종종 본분을 망각하고 자신들만의 밥그릇논리나 사익을 챙기려고 하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아직 증명되거나 반증되지 않은 '추측'은 왜곡과 변색의 가능성을 언제든 내포한다. 이때 이들이 행하는 사회적 영향력은 사회적 권력이 되고 권력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독일 작가 중 하나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소위 말하는 사회 엘리트집단이 건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 지를 그린 소설로 유명하다. 영화화되어 크게 흥행했던 소설로 현재까지도 공론장(public sphere)의 폭력을 다룰 때 언제나 인용되는 고전이다.

197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성실하고 평판이 좋은 카타리나라는 젊은 여인이 유린당하는 5일 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카타리나는 파티에서 만난 한 남자와 단 하룻밤을 보낸 이유만으로 경찰에 연행되면서 오해를 받게 된다. 그 남자가 은행 강도에 살인 혐의로 쫓기고 있었던 것을 조사 중 알게 됐으나 도망친 진상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한다. 특히 특종을 노리던 기자, 퇴트게스가 주변사람들의 말을 교묘하게 각색해서 기사에 인용하면서 카타리나는 살인범의 정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 등 '새로운 인물'로 창조된다. 사실 그녀는 가정경제학교를 졸업한 가정관리사로서 아주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은 추측이 난무하고 '알 권리'라는 이름하에 사생활까지 무차별 보도하는 퇴트게스에 의해 카타리나는 만신창이가 된다. 결국 저널리즘의 무형의 폭력은 살인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낳으며 소설이 마무리된다. 이 작품은 독일의 극좌테러집단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비난을 받고 해직되었다가 나중에 무혐의로 복직되었던 하노버대 교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복직은 했으나 무분별하게 실추되고 훼손된 개인의 명예는 원상복귀 될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의 존엄함'이 배제된 사건 위주의 억취소악은 서로 할퀴고 헐뜯다가 결국 모두를 병들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자의적이고 모호한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집단이 각자의 자리에서 보다 냉철한 이성으로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시민이 살기 좋은 행정을 펼치는 공무원 집단은 물론, 국가발전을 우선하는 정치권, 우중(愚衆)의 좌표가 되는 언론, 그리고 철인(哲人)으로서 세계관을 정립하는 학계 등이 대표적 엘리트 집단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 역할이란 더 이상 카타리나 블룸과 같이 한 개인이 무형의 집단 폭력에 유린되는 불신의 사회를 종결하는 일이며, 상대가 어떻게 되든 말든 내 잇속부터 챙기는 "아님 말고"식의 무책임함을 척결하는 데 책임을 다 하는 것이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것을 사람들은 결국 그렇게 믿게 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바르게 제시하고 "세상은 믿을만하고 아름답다"고 외치며 서로 밀어주고 이끌어주자. 살만한 세상은 그런 게 아닐까.

정관성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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