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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상의 문화산책] 매체와 격세유전의 문화

2019-06-18기사 편집 2019-06-18 08: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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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백낙청은 한국 예술의 '이월가치 단절'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전통이 현대성 안으로 이월되지 못한 점은 한국문화사의 아픈 구석이다. 그러나 생물학의 현상인 '격세유전'(隔世遺傳)은 새로운 영감을 준다.

할머니의 유전자가 어머니를 거치지 않고 손주에게 전달되는 '세대를 격한' 유전 형식은 생태계의 유전자 풀(pool)에 다양성을 가져온다. 물론 문화계승의 양상은 생물학의 그것과는 다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비문화적인 결과론의 토대에서만 '격세문화'가 옹호될 수 있다. 현대성 안에 부활된 전통문화의 유전자만이 생명을 이어나간다.

문화적 유전자는 생물학적 유전자처럼 신체의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 격세하지 않는다. 문화적 유전자가 격세하려면 문화적 신체가 필요하다. 문화적 유전자의 신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매체다. 매체는 문화의 격세유전에 기여한다. 특히 매체는 국악과 같은 전통예술의 가치를 선양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00년 개국한 국악방송은 국악과 대중과의 소통, 새로운 국악창작을 활성화해 왔다. 2017년 개국한 대전국악방송도 지역의 국악인을 비롯한 전통예술인들의 소통과 창조적 무대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웸블리 공연은 또 다른 표상이다. 거기서 우리의 국악음률이 울려 퍼졌고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이 소식은 유튜브를 비롯한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인에게 공유되었다. 그렇게 공유된 국악은 격세문화의 상징으로서, 그리고 문화적 유전자의 세계적 풀(pool)안에서 '다양체들의 고른 판(pan- 板)'임을 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망양록(忘羊錄)이라는 장이 있다. 연암과 중국의 선비들이 음악의 악률 등에 대해 담론한 글이다. 망양록이라는 표제는 담론을 나눴던 그날의 일화에서 따왔다. 연암 등은 음악에 대한 논의를 하다 준비해 두었던 양고기가 다 식은 줄을 몰랐다고 한다. 이 일화의 전편은 공자시대에 있다. "공자께서 제나라에서 순임금의 음악인 소韶를 들으신 후,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으시곤 말씀하셨다. 음악을 하는 것이 이런 경지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연암의 표제 망양록은 이천년의 세월을 격세한 공자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다.

아름다움과 선을 다한 예술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부침을 겪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몇 가지 전제와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전제란 예술장르에 내재한 가치의 측면이다. 우리 국악처럼 선함과 아름다움을 다한 예술 내재적 내공이 그것이다. 노력이란, 어려운 가운데서도 전통을 이어오기 위해 바친 선배 예술인들의 헌신과 그것을 창조적으로 이어가려는 젊은 예술인들의 기투(企投)다. 매체는 이러한 노력을 선양하고 알린다.

국악을 비롯한 전통문화예술의 매체환경은 보다 나아질 전망이다. 전통예술TV 개국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판(pan- 板)은 펼쳐지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빛나는 우리 문화는 그 위에서 활짝 피어날 것이다.

류달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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