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미의 독립영화 읽기]

1951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극장이라는 점에서 와세다쇼치쿠에 들어섰을 때 맞아준 직원들의 모습은 놀라웠다. 많아도 40대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직원들이 총지배인을 비롯해 각각의 업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일본의 미니씨어터들을 찾아갔을 때 지배인은 대부분 50대였고, 밑의 직원 한 두명 정도만 젊은 사람이었던 것에 비해 직원들 전체가 젊었다. 대학 근처에 위치한 덕분에 학생들도 많이 찾고 있어 다른 일본의 미니씨어터 중에서도 꽤 활력이 넘쳐보였다. 처음에는 로드쇼(주요 극장에서의 개봉을 마치고 난 영화를 받아서 상영하는 형식의 극장)관으로 운영되던 이 곳은 75년부터 명화좌로서 운영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디지털 영사기도 도입하여 현재 영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로비에는 리퀘스트 보드와 함께 앙케이트 보드가 있었다. 리퀘스트 보드에는 관객들이 앞으로 상영했으면 하는 영화를 써서 붙이고, 앙케이트 보드에는 직원들이 몇 개의 영화나 주제를 선정하여 관객의 투표를 받았다. 그렇지만 주 홍보 창구는 트위터와 메일 매거진이다. 메일 매거진 등록자 수는 8000여 명인데다 단관극장 중에서 가장 많은 트위터 팔로워를 가지고 꽤 활발하게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이렇게 관객들의 피드백을 열심히 받아 관객들의 영화 성향을 파악하고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지금은 이렇게 활발히 운영되고 있지만, 2002년 와세다쇼치쿠는 휴관 기간을 가졌다. 금전적인 문제라기보다 극장을 운영할 스탭이 충원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다시금 재정비를 하는 중에 와세다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재개관을 요청하는 서명운동을 열기도 했다. 이러한 관객의 열기와 오너의 노력은 재개관으로 이어졌고 와세다쇼치쿠의 역사는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직원들은 이 이야기를 다소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영화를 볼 수 있는 방편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보자면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관을 직원들이 잘 만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객들이 사랑하는 것은 영화 뿐 아니라 영화관이기도 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 낸 와세다쇼치쿠라는 극장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우리끼리의 뒷풀이 자리를 가졌을 때 한국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한 직원 분이 함께 자리했다. 서로 자국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다 서로가 우리는 일본의, 그분은 한국의 영화를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웃고 말았다. 그렇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우리만의 강점과 미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려나가야 할지는 여전히 계속되는 과제로 남아 있다.

장승미 대전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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