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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남의 문화산책] 일상과 커피

2019-06-11기사 편집 2019-06-11 08:3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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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커피를 쓴맛과 단맛을 모두 가진 인생에 비유한다. 갓 볶아낸 커피의 구수한 향에 이끌려 커피를 찾지만, 막상 그 맛은 시고 떫고 쓰다. 하지만 그 와중에 특유의 깊은 맛이 치고 올라온다. 이 향은 중독성이 꽤 커 한 번 맛을 들이면 끊기 어렵다. 커피의 쓴 맛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커피 속 카페인 때문인데,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커피가 위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두뇌는 전쟁터 기마대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마치 기습을 하듯 생각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카페인은 피곤이나 졸음을 야기하는 아드레날린 수용체를 억제함으로써 각성효과를 나타낸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카공족'이나 카페를 오피스처럼 활용하는 '카피스족'들에겐 카페인과 함께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을 유도하는 커피의 은은한 향과 적당한 소음, 그리고 쾌적한 온도와 조명, 빠른 속도의 WIFI가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 한편으론 잠을 줄이고, 카페인으로 버티면서까지 공부하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좀 서글프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커피는 '한 잔의 여유', '사교의 수단'이며 심지어 자신을 위한 '소소한 사치'로 여겨진다. 그래서 커피는 대표적인 기호식품이다.

커피는 커피의 원산지로 알려진 에티오피아 '카파' 지역명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커피나무 열매를 먹은 염소가 밤새 울어 대면서 커피의 각성효과를 우연히 알게 됐고 이집트와 예멘을 거쳐 아랍과 유럽, 미주를 거쳐 아시아, 세계로 전파됐다. 우리나라에 처음 커피가 전해진 것은 1880년대라고 추정되는데, 가배라는 한자어 이름이 붙었고 서양에서 들어온 탕약이라는 의미로 '양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고종 황제도 커피를 즐기셨다는데,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시끄럽고 어지러운 마음을 커피로라도 달래고 싶으셨을까, 아니면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이 필요해서였을까 상상해 본다. 호텔에서나 마실 수 있었던 커피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6·25 전쟁 이후 미군부대를 통해 인스턴트커피가 다량 보급되면서부터였다.

달달한 다방커피를 앞에 두고 젊은 지식인들과 문인들,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들은 다방에 모여 토론하고 세태를 걱정했다.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학림다방이나 독수리다방도 당시 대학생들의 낭만이었다. 200-300원하던 '커피믹스'나 '자판기 커피' 전성시대를 지나 1999년 이화여대 앞 스타벅스 매장이 처음 소개되면서 4000-5000원짜리 '아메리카노', '라떼'로 대변되는 커피 문화가 대세가 됐다. 당시 밥값보다 비싼 커피 값은 '허영심'과 '과소비'의 대명사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은 상위 7% 생두를 사용해 한 잔에 1만 원 넘는 스페셜티 커피도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한 커피 전문점 매장 오픈 날, 휴가까지 내고 새벽부터 줄을 서서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아침의 '모닝커피'와 점심 '식후 커피'는 일상이 됐고,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7만 7000개의 카페가 있고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연간 377잔에 달한다. 커피콩에는 항산화 활성이 있는 폴리페놀 함량이 높다고 하지만, 지나친 커피 섭취로 인한 골다공증이나 위식도 역류를 일으키며, 특히 임신부나 수유부가 복용한 카페인은 간의 해독능력이 미숙한 아기에게 전달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김기남 대전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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