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남전에 참전해 후유증을 앓으면서도 보훈단체 회원 복리증진 및 봉사활동에 앞장서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와 가정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온 제45회 대일보훈대상 수상자들의 삶이 귀감이 되고 있다. 나라에 대한 헌신과 굳은 신념으로 역경을 극복한 수상자들의 공적을 소개한다.

△자립상 전순규 씨=전 씨의 남편 신순식 씨는 충남대 학생군사교육단 3기생으로 경기도 파주의 전방부대 소대장을 맡았다. 1972년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남편 신 씨가 척추와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청란여고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지만 부상 부위가 재발하며 1979년 작고했다. 39세 나이에 남편과의 사별하게 된 전 씨는 슬픔도 잠시 생계를 위해 시어머니를 모셔와 3남매를 맡기고 일을 시작했다. 식당과 여관 운영을 하면서 3남매 모두 대학을 졸업시킨 전 씨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전 씨는 어려운 환경과 역경 속에서도 국가유공자 가족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전몰군경유족회 회원으로 반찬 배달 등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봉사활동으로 지난 해 대전시장상을 받는 등 타인의 모범이 되고 있다.

△자립상 강석경 씨=강 씨가 3살 되던 해에 부친인 강대대 씨는 6·25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투 중에 전사했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혈혈단신이 된 강 씨는 불굴의 투지로 중학교를 어렵게 졸업했다. 이후 생활전선에 뛰어든 강 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보훈가족`이라는 긍지로 고난을 이겨냈다. 1977년 결혼한 후 1994년부터 보훈가족을 위한 봉사활동에 헌신했다. 전몰군경유족회 대전지부 회원으로 활동한 이후 2001년부터 7년 동안 유성구 지회장을 맡은 데 이어 2007년부터 지난 해까지는 대전지부 사무국장을 지내며 6·25참전 UN전사자 유족돕기와 현충원 참배객 도우미 활동, 어려운 회원 돌보미 등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하며 보훈단체 위상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

△자립상 유관철 씨=1969년 9월 해병대에 입대해 이듬 해 5월 월남전에 파병돼 제 2여단 본부 청룡부대 수색대원으로 활동했다. 귀국 후 해병배탄약고에서 제대했으나 파월 참전 중 얻은 병으로 후유증, 고혈압, 다발성 신경마비 근질환으로 경도를 받아 고통을 받던 중 2017년 12월 희귀병인 희귀질환인 아밀로이드증을 얻어 후유증 5급 판정을 받았다. 현재 충남대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유 씨는 1972년 전역 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모와 3남매를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1997년 해외참전과 고엽제 전우회를 거쳐 월남참전기념탑 건립 추진위원으로 회원간 소통에 나섰으며 최근까지도 운영위원과 기동대장으로 지회의 행사를 총괄하며 지역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모범상 강석영 씨=강 씨는 1968년 육군으로 입대해 이듬 해 강원도 화천 15 사단에서 수색중대 작전 중 지뢰 폭발로 하퇴절단 부상을 당했다. 1971년 1월 육군 상병 5급 국가유공상이자로 명예제대했다. 강 씨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상이군경회원으로 회원의 복지와 처우 개선에 힘썼다. 강 씨는 1972년부터 2004년까지 32년 간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대전충남연합지부 동구지회 지도원,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유성구지회 지도원으로 활동하면서 봉사활동에 헌신했다. 현재 상이군경회 대전지부 중앙대의원으로 6년째 대전보훈병원 환자들을 위문하고 생활 여건이 어려운 이웃을 지원하는 등 모범이 되고 있다.

△모범상 김진현 씨=1993년 4월 강원도의 부대에 입대해 1994년 8월 훈련 도중 무릎과 허리 부상을 입었다. 신체적 여건이 어려움에도 이듬해 만기 제대한 김 씨는 2011년 지원공상 7급 판정을 받았다. 김 씨는 특수임무유공자회 대전지부 회원으로 활동하며 단체와 지역사회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2008년부터 지역 놀이터와 주택가 골목 등을 돌며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선도해 지역 시민의 안전과 방범 수호에 나서고 있다. 재난재해복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독거 및 저소득 어르신들의 무료급식 지원 활동에 나서며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

△모범상 서찬순 씨=서 씨의 남편인 조병대 씨는 1958년 군 복무 중 복숭아 뼈에 총상을 당해 35년 간 후유증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1993년 작고했다. 서 씨는 남편을 떠나보낸 그 해 자궁암 수술을 받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식당 일을 하며 1남 3녀를 키워 결혼시키며 참된 어머니 상을 보였다. 또 당뇨, 고지혈증 등 몸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전몰군경미망인회 서산시지회 총무를 맡으며 회원을 위한 봉사에 나서고 있다. 서 씨는 매달 충령각, 충혼탑 주변을 정화, 참배하며 애국애족정신과 보훈선양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서산시 여성단체 늘보람 회원으로 지역 저소득 시민과 국가유공자를 위해 점심 식사와 김장김치 제공, 고령 노인 자택을 방문해 청소 및 빨래 등의 봉사도 지속적으로 하며 국가유공자 아내로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보훈대상자의 복지증진과 보훈단체의 위상 제고를 위해 보훈회관 건립에도 기여했으며 월남 참전비 건립, 충령사 봉사활동 등에 나서며 지역사회의 안보의식과 호국정신을 높이는 데 모범이 되고 있다.

△모범상 최한성 씨=최 씨는 1952년 6·25 한국전쟁 중 강원도 인제 전투에서 전사한 고 육군 소위 최인화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3세 때 어머니마저 재가하며 홀 할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군 제대 후 기업에 입사해 할머니를 정성으로 봉양하며 자립기틀을 다졌다. 1994년 회사를 충남 아산으로 이전, 회사를 운영하며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충남지부 아산시지회장으로 활동했다. 충렬탑 위패 제작 등 보훈 가족의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독거노인과 결식아동 등 불우이웃 돕는 데 앞장섰다. 또 재해현장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지역과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하며 유족회 위상 제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장한아내상 장향지 씨= 장 씨의 남편 서일석 씨는 해병대 5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 중 1971년 1월 수류탄,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해 척추에 수류탄 파편과 복부에 총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를 입었다. 장 씨는 1급 중상이자 아내로서 시련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남편의 재활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생계를 꾸려갔다. 남편의 팔과 다리가 돼 지극한 보살핌으로 삶의 의욕을 갖게 했으며 노부모의 간병에도 최선을 다했다. 남편의 상이군경회 모임 때면 항상 함께 참석해 고령 회원들을 보살피는 등 보훈단체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헌신적인 내조로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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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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