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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호국부자의 묘 앞에서

2019-06-10기사 편집 2019-06-10 08: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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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에 호국부자의 묘가 있다. 공군전투기를 몰며 대한민국을 지키다 산화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묻혀있는 곳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고(故) 박명렬 공군소령은 1978년 공군소위로 임관, 제17 전투비행단 전투기조종사로 근무하다 1984년 3월 14일 팀스피릿 훈련 중 충북 청원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순직했다. 그때 나이 31세의 청춘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아버지인 박명렬 소령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아들 고(故) 박인철 공군대위는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2004년 3월 17일 공군소위로 임관했다. 제 20 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조종사로 근무했으며 2007년 7월 20일 야간 요격임무 수행 중 태안반도 서북쪽 해상에 추락, 27세 나이로 순직했다. 아버지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호국부자의 묘에 안장됐지만 유해를 찾을 수 없었던 아들은 비행 전 남겨둔 유품으로 잠들어 있다. 빨간 마후라를 두르고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부자가 함께 묻혀있는 묘소 앞에 서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공군출신인 나는 해마다 현충일 참배를 갈 때 꼭 호국부자의 묘를 찾아 이 분들의 명복을 빌고 돌아온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애국자들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의 대가인 것이다. 올해는 공군창설 7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초 공군정책발전자문회의 때 조종사들의 격무에 대한 토론과 격려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회의가 끝날 때 쯤 일선 전투조종사들의 극한 근무상황을 체감하고 조종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직접 전투기 탑승체험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내 나이가 나이인 만큼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밀려왔다. 일단 공군항공우주의료원에서 정밀신체검사와 항공적성훈련부터 받았다. 중력가속기로 중력테스트를 할 때는 숨이 멎고 신체가 오그라들 것만 같았다. 산소결핍체험과 비상탈출 훈련 등 생전 겪어보지 못한 테스트를 거쳐 합격수료증을 받았다. 마침내 제8 전투비행단에서 국산 초음속전투기 FA-50에 올랐다. 모든 과정은 현역 조종사들의 평소 임무와 똑같은 것이었다. 조종장구 착용, 임무브리핑, 기체계기판 최종점검, 최종 육안정비검사 등을 거친 FA-50은 힘차게 하늘로 솟아올랐다. 내가 탑승한 전투기의 전방석 조종사는 소령이고 다른 두 대의 조종사는 대위와 중위였다. 모두 피가 끓는 젊은이들이다. 2만 5000피트까지 급상승을 하자 착용하고 있던 G슈트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면서 이륙할 때부터 뛰던 가슴은 숨을 쉬기 어려운 상태로 치달았다. 중력부하에 따른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현역조종사들은 중력의 9 배 까지 버티는데 때로는 실핏줄이 터진다고 한다. 수평비행을 할 때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함께 떠있는 뭉게구름을 보는 여유가 생겼다. 밑을 내려다보니 푸른 동해와 아름다운 산하가 그림처럼 펼쳐있었다. 전투기는 상황에 따라 순식간에 급회전을 했다. 이때는 수천 미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충격과 함께 구토증으로 울렁였다. 이대로는 몇 분도 버티기 힘든 극한체험이었다. 조종사들은 각종 교신을 통해 임무지시를 받고 보고를 하며 급상승 급회전 수평비행을 반복했다. 이 젊은 조종사들과 무려 50분 이상 체공하며 극한 체험을 함께했다. 착륙순간도 마치 활주로에 쏟아져 내리는 듯 느껴져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착륙 후 임무수행보고 디브리핑이 끝나고 조종사휴게실에서 탑승체험 소감발표와 조종사격려 간담회를 가졌다. '여러분들이 진정한 애국자이며 영웅입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수십 회 출격한 노련한 조종사들도 매번 다시 출격할 때마다 몸과 마음을 조국에 바친다는 각오와 긴장감으로 근무한다고 한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바로 365일 24시간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는 이 애국자들 덕분이다. 전투기 탑승체험을 하고 맞이한 올해 현충일에는 호국부자의 묘 앞에서 더 뜨거운 마음으로 추모의 인사를 드렸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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