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는 일단 폐지하자.` `아니다. 지난해 임시할인처럼 여름철 누진구간을 확장하는 게 합리적이다.` `아무튼 전기 물쓰듯 하는 사람들 정신차려야 한다. 누진제 찬성한다.`

정부가 사용량에 따라 요금단가를 높이는 `전기요금누진제`를 이달중 개편하겠다며 의견수렴에 나서자 백가쟁명식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매년 여름 폭염이 지나고 나면 `요금폭탄`을 맞았다는 아우성이 높았던 만큼 이참에 아예 누진제를 없애야 한다는 폐지론에 무게추가 기울어 있지만 여러 대안 중 요금할인 혜택가구가 가장 많은 `누진구간 확장안`이 현실성 측면에서 지지를 얻어가는 모양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3일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토론회`를 열고 △현행 3단계 누진제 구조를 유지하되 구간을 늘리는 방안(1안·누진구간 확장안) △3단계 누진제를 여름철에 2단계로 줄이는 방안(2안·누진단계 축소안) △누진제를 폐지하는 1단계 단일안(3안·누진제 폐지안) 등 3개 대안을 공개했다.

9일 한국전력공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마련된 의견수렴 게시판에는 476건에 달하는 다양한 의견이 올라와 있다. 지난 4일부터 한전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의견 수렴절차에 들어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5일여 동안 매일 100건 가까이 의견 개진이 이뤄진 셈이다.

일단 게시판 내에서는 전기요금누진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주택만 불공정한 누진제 폐지. 상업·산업용은 누진제 없어서 전기 펑펑 쓴다"거나 "가정용이 전체 사용량 중 13.9%밖에 안 된다. 전기가 부족하면 산업용과 일반용을 누진제 해야 하는 게 현명한 거 아닌가. 왜 가정용만 비싸게 돈을 받으려 하는지 궁금하다"며 성토하고 있다.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항의성 문제 제기로 읽힌다. 그간 한전 측은 "주택용 누진제는 1973년 석유파동을 계기로 에너지 다소비층 소비절약 유도와 사회적 취약계층인 저소득층 보호를 위해 시행된 것"이라며 "주택용 외 고객에 대해선 전기요금의 기본요금을 주택용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하고 초과사용부가금제도, 계절·시간대별 차등요금제 등으로 절약과 합리적인 전기사용을 유도하고 있다"고 해명해왔다.

누진제 도입 45년 만에 여론은 전면폐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전기요금누진제 민·관 태스크포스(TF)의 분석 결과는 신통치 않다. 할인 적용 가구 수는 887만 가구로 1안(1629만 가구)과 2안(609만 가구)의 중간 규모에 불과하고 할인 수준 또한 월 9951원으로 3가지 안 중 가장 적다. 현행 누진제는 1구간(200㎾h 이하)에 1㎾h당 93.3원, 2구간(201-400㎾h)에 187.9원, 3구간(400㎾h 초과)에 280.6원을 부과하는데 누진제 폐지안은 각 구간 평균치인 125.5원을 연중 단일요금으로 일률 적용하기 때문이다.

누진제 논란이 근본적으로 해소되는 반면 전기를 적게 쓰는 1구간 가구의 부담이 커지고 전기를 많이 쓰는 3구간 가구의 요금은 떨어지는 것이어서 형평성과 함께 `부자감세`라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날 수 있다.

폐지안 다음으로 많은 지지를 받는 여름철 누진구간 확장안은 각 구간 요금은 그대로 두면서 7-8월 한시적으로 1구간 전기사용량 상한을 기존 200㎾h에서 300㎾h로, 2구간을 301-450㎾h로, 3구간을 450㎾h 초과로 조정하는 게 골자다. 할인 혜택 가구가 1629만 가구로 3가지 안 중 가장 많고 할인액은 월 1만 142원으로 중간 수준이다. 요금이 오르는 가구도 없어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지만 여름철을 제외하면 현행과 같은 누진제 틀이 유지된다는 단점이 있다.

전기요금TF는 온라인 의견수렴과 11일 공청회를 거쳐 3가지 안 중 하나를 권고안으로 추천할 예정이며 추천안은 다시 한전 이사회 의결, 전기위원회 심의, 산업부 인가를 거쳐 7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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