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원산지명칭(AOC) 와인 생산량 2위인 론(Rhône) 와인 지역은 북부 론과 남부 론으로 나뉘는데, 론 강 주변의 급경사에 좁게 위치한 북부 론의 와인 생산량은 론 전체의 1/10도 되지 않습니다. 리용(Lyon) 아래 고대도시 비엔느(Vienne)로부터 론강을 따라 발랑스(Valence)까지 약 60km에 달하는 북부 론의 핵심 지역은 마치 부르곤뉴의 황금 지역으로 일컬어지는 꼬뜨 도르(Cote d`Or)와 유사합니다. 특정의 한 마을에만 포도원을 보유한 보르도 샤또와는 달리 북부 론 와이너리는 부르곤뉴처럼 여러 마을 곳곳에 포도밭을 소유하여 밭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와인들을 생산합니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에 포도원을 일구는 보르도와 부르고뉴와는 달리 북부 론 와이너리는 론 강 계곡에 형성된 가파른 화강암토 경사지에 계단식 포도밭을 만들어 쉬라 단일 품종으로 멋진 레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화강암 토양은 보르도 메독의 자갈 토양보다도 더 효율적인 축열식 난방기 역할을 합니다. 전반적으로 북부 론 주요 8개 AOC 마을의 비탈면이 동남향 방향이나, 강의 굴곡에 따라 정남향에 가깝게 위치하여 햇볕을 듬뿍 받는 에르미따쥬(Hermitage)와 꼬뜨 로띠(Cote Rotie)가 북부론을 대표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북부 론 남쪽에 위치한 에르미따쥬의 명칭은 13세기 초에 십자군 원정에서 부상당한 기사 가스파르 드 스테랭베르그(Gaspard de Sterimberg)가 이 마을 언덕 위에 작은 성당을 짓고 은둔의 처소로 삼으면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현재 이 소성당 쌩 크리스토프(Saint Christophe)를 소유한 폴 자불레 애네(Paul Jaboulet Aine)의 `에르미따쥬 라 샤ㅤㅃㅔㄹ(La Chapelle)`은 에르미따쥬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입니다. 성당이 있는 언덕에 올라 주변을 관찰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성당 근처 대부분의 포도밭이 엠 샤푸띠에(M. Chapoutier)의 소유로 표시되어 있더군요. 엠 샤푸띠에는 보르도 거대 샤또 한 개 수준의 에르미따쥬 전체 포도밭(134ha)에서 제일 큰 규모(30ha)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폴 자불레 애네는 스테랭베르그를 기리기 위하여 론의 주요 화이트 품종인 마르산느(Marsanne)와 루싼느(Roussanne)를 블렌딩한 화이트 와인 `르 슈발리에(le Chevalier) 스테랭베르그`도 생산합니다. 에르미따쥬는 예로부터 보르도 와인에 견줄만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여, 한 때는 보르도 일등급 수준의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불어로 로띠(Rotie)는 `불에 구운`을 의미합니다. 경사도가 심한 곳은 무려 60도에 달하는 꼬뜨 로띠는 여름철이면 말 그대로 구워질 지경이랍니다. 북부 론 맨 위에 위치한 꼬뜨 로띠는 상대적으로 뒤늦은 20세기 후반에야 유명해졌는데,. 현재 론 와인의 최고 생산지 꼬뜨로띠의 명성에는 이기갈(E. Guigal)의 역할이 컸습니다. 42개월간 새 오크통에 숙성하여 포도밭별로 와인을 출시했습니다. 꼬뜨로띠를 대표하는 이기갈의 싱글 빈야드, `라라라 시리즈`로 불리는 라물린(La Mouline), 라랑돈(La Landonne), 라튀르크(La Turque)의 2003년, 2005년, 2009년 빈티지는 최근 은퇴 선언한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모두 100점 만점을 받았습니다.

와인을 발효·숙성 후 병입해서 판매하는 이들 와이너리 본사는 마을 내에 있기에, 경사지의 포도원 곳곳에 커다란 콘크리트 입간판을 세워 와이너리 이름을 광고하는 것은 다른 와이너리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입니다.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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