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너 소사이어티] 신성환 중앙종합관리(주) 회장

아너소사이어티 신성환 청주해장국 대표 사진=빈운용 기자
아너소사이어티 신성환 청주해장국 대표 사진=빈운용 기자
일거양득(一擧兩得). 사전은 `한 번 들어서 두 가지를 얻는다`고 풀이한다. 신성환(62) 중앙종합관리㈜ 회장은 두리모(미혼모)를 돕는 일이 일거양득일 것이라고 했다. 두리모를 지원하면 혜택이 그 자녀에게도 돌아갈 테니 일석이조라는 얘기다. 2017년 9월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58호 회원으로 가입한 신 회장은 "하늘의 축복으로 사업에 성공했지만 벌어놓은 돈 다 쓰고 죽을 건 아니지 않느냐"며 "두리모 지원을 위한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좋은 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 회장이 두리모를 돕기로 마음먹은 건 그들에게서 희망과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을 하며 여러 미혼모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딱하다` 여겼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예의 바르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더군요. 그런 사람들이 `미혼모`라는 사회적 편견에 갇혀 스스로 위축되는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힘들면 아이도 힘들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무릎을 탁 쳤죠. `그래. 내가 이 미혼모들을 도와보자. 나이 어리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젊은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 아이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어때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신 회장은 그러면서 "미혼모와 아이들이 더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도와야 한다"며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먼저 시작해 보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고액기부자에서 두리모 지원 비영리재단으로 사회 기여의 폭을 넓히고 있는 신 회장은 `청주해장국`으로 속칭 대박을 터뜨린 사업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37년 청주 무심천변에서 시작된 청주해장국은 1970년대 대전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 회장은 1994년 청주해장국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해장국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후 유성본점 확장 개업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2002년 미국 LA, 뉴욕, 중국 상하이 등 해외는 물론 전국에 걸쳐 171개 사업장을 거느리며 업계에서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청주해장국은 인공감미료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13가지 양념과 천연과즙을 잘 배합해서 숙성한 천연양념만을 사용하죠. 음식이 맛있는데 값도 싸니 사랑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한창 장사 잘 될 때는 정말이지 돈 셀 시간조차 없었어요. 전국 각지에서 청주해장국 한 그릇 먹겠다고 몰려들었고 1년에 대략 300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입니다. 물론 공식 기록은 아닙니다. 이 모든 게 80년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청주해장국을 찾아준 고객들 덕분이죠."

청주해장국으로 승승장구한 신 회장은 2010년 공동주택이나 빌딩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중앙종합관리를 인수했다. 현재 대전·세종·충남·충북 지역 아파트 150개 단지의 관리업무를 맡고 있다. 신 회장은 "적극적이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여러 아파트의 입주민들로부터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며 "많은 주택관리기업 중 우리가 대전권 1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자평했다. 신 회장은 다만 10년 가까운 중앙종합관리 운영을 통해 아파트 관리의 어려움과 부실함을 절감했다면서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아파트 관리업무를 100% 전국 입찰을 해 업체를 선정하고 관리주체가 바뀌었을 때 기존 업체가 제대로 업무 인계를 해주지 않으면 떠날 수 없는 구조"라며 "일본에서 아파트 입찰 비리가 없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 이런 투명한 체계가 뒷받침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으로 구상 중인 게 `교육단체` 설립이다. 두리모 지원을 위한 비영리재단과 함께 신 회장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돈 안 되는` 아이템이다. 공동주택이나 빌딩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관계자 교육기관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주택관리업계에 개선·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며 "우리사회를 투명하고 깨끗하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신 회장은 `기부문화 활성화`에 대한 나름의 지론도 강한 어조로 펼쳐보였다. 그는 "아너소사이어티라는 고액기부제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대전의 지역 규모 등으로 미뤄 적어도 1000명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딸아이와 가족의 강력한 권유로 가입하고 나니 주위에서 `대단하다`거나 `잘했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돈이 어디서 났기에 저렇게 큰 돈을 기부하냐`는 식으로 수군거리는 말도 많아 마음을 다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한 마디로 기부자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지역 풍토가 사회적으로 뿌리내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신 회장은 "누군들 고액기부를 하고 싶어도 이런 숙덕공론이 무서워 할 수 있겠느냐"면서 "선진국처럼 기부를 일상화하려면 기부제한을 없애는 동시에 기부자를 있는 그대로 평가해 주는 기부문화가 하루 빨리 조성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1945년 광복 후 부모가 남한으로 내려와 대전에 정착한 뒤 태어났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어려서부터 온갖 궂은일을 하며 성공을 꿈꾼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기타를 좋아하고 또 꽤나 잘 다뤘다.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던 신중현 선생을 찾아가 문하생이 되려고도 했다. 그런데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꾸지람을 듣고 내려왔다고 한다.

"그때 선생님이 저를 받아주셨다면 분명 1등 수제자가 됐을 겁니다. 좋아하는 기타를 치며 즐겁게 살았겠죠. 그래서 더 버티며 선생님을 설득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요즘도 가끔 합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죠. 하지만 사업을 하며 잠 못 자고 절치부심한 결과 성공한 사업가라는 평가를 받게 됐고 그 밑천으로 좋은 일 하고 있습니다.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려고 노력도 하고 있고요. 이만하면 행복한 인생 아니겠습니까."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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