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민음사/ 372쪽/ 1만 4000원

사하맨션
사하맨션
`82년생 김지영`으로 한국 사회 젠더 감수성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조남주가 첨단의 시대가 조장하는 공동체의 붕괴와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기업의 인수로 탄생한 기묘한 도시국가와 그 안에 위치한 퇴락한 맨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발전과 성장이 끌어안지 않는 거부당한 사람들의 절망감을 통해 소외된 삶의 현재와 미래를 상상한다.

기업이 한 도시를 인수한다. 도시는 본국으로부터 독립, 세상에서 가장 작고 이상한 도시국가로 변모한다. 밖에 있는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고 안에 있는 누구도 나가려 하지 않는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이곳을 사람들은 타운이라 부른다. 안전하고 부유하며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타운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주민권이 있는 L과 체류권이 있는 L2.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타운에서 인정하는 전문 능력,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은 주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 미성년자는 주민의 자녀이거나 주민인 법정후견인이 보증할 경우 주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편 주민 자격에는 못 미치지만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자격 심사 및 건강 심사를 통과하면 체류권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2년 동안 타운에서 살 수 있다. 2년 동안은 걱정 없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지만 이들을 원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건설 현장, 물류창고, 청소 현장같이 힘들고 보수가 적은 일이다. 그리고 주민권은 물론 체류권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사하맨션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하`라 불린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환대의 공동체, 타운의 유일한 통로이자 비상구. 30년 동안 맨션을 찾은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반품되었거나 반입조차 불가한 사람들, 거부당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거부당한 그들, `사하`의 삶에 드리운 그늘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시장의 논리가 공공의 영역을 장악한 미래를 조심스럽게 예언하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공존시키며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묻는다.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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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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