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국회에서 `경찰개혁의 성과와 과제 당정청 협의회`가 열렸다.

이날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람은 단연 조국 민정수석이었다. 보도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정부조직법상 상급자인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거리를 두고 소위 실세인 조국 수석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조국 수석은 계속 민갑룡 경찰청장 바로 옆에 앉아 전직 경찰청장이 정치개입으로 구속된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진영 장관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과거 박근혜 (적폐)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전력 있는 진영 장관의 정치적 무게감이 대통령의 분신, 정치적 동지라 언급되는 조국 수석에 한참 떨어진다는 점만은 이날 회의가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국정운영은 법치(法治) 아닌 인치(人治)다. 우리 헌법에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長)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대통령실 비서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청와대 5급 행정관이 육군 참모총장에게 전화해서 커피숍에서 장성인사에 대해 논의하고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한 사건으로 전직 장관이 수사를 받는 등 헌법기관인 국무회의(내각) 위에 청와대 비서들이 군림하는 나라는 정상국가가 아니다.

한국 정치 적폐의 근원은 헌법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이다. 재미있는 점은 조국 수석은 교수 시절 이런 제왕적 대통령의 인치를 비판했다는 것이다. 2002년 12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당시 서울법대 조국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법과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아 `제왕적 대통령`, `인치` 같은 말이 스스럼없이 쓰였다"며 "법률가 출신인 노 당선자가 진정한 의미의 법치를 이뤄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금 자기의 처신과 상반되는 말이다. 청와대 비서실장 지낸 류우익 씨는"비서는 얼굴, 입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야 할 불문율이다.

지난 2018년 3월 대통령 개헌안 발표를 기억해 보자. 내각에 버젓이 법무부 장관, 총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개헌안 역시 조국 민정수석이 발표했다. 그는 지난 5월 19일 다시 개헌안 전문(前文)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지금 헌법에 대비해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 운동, 6·10 항쟁을 명시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 헌법은 독립전쟁 이후 제정되었다. 몇 차례 수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전문(前文)은 바뀐 적 없다. 조국 수석의 헌법 상식으로는 미국 헌법 전문에 독립전쟁, 남북전쟁, 2차 세계대전 등 미국역사의 주요 전환점이 빼곡히 담겨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 헌법 전문은 매우 짧고 자유, 축복, 공동방위 등 추상적이고 가치 중심적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독일과 일본 헌법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제정되었다. 헌법제정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원인, 전쟁 중 주요 사건은 적시되어 있지 않다. 두 나라 헌법 전문도 추상적이고 가치 중심적이다.

프랑스 헌법은 잘 알다시피 대혁명 이후 제정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의 피비린내 나는 과정에 대한 언급은 전문에 없다. 그저 1789년 공표된 `인권선언`만 거론될 뿐이다.

정치 선진국들이 헌법 전문에 구체적인 사건들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에 역사적 사건을 적시하면 시간이 흘러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개개의 사건을 초월한 항구적 가치 위에 나라가 서 있기 바라는 국가에 대한 존경과 헌법에 대한 외경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국 수석은 헌법이 지금 눈에 보이는 지지층과 5년짜리 권력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못내 궁금하다.

강병호 배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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