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었던 브로타에스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작업이 있다. 첫 미술 작품인 `비망록(1963)`은 50권 정도 남은 그의 동명의 마지막 시집들을 회반죽 안에 파묻어 오브제로 만든 것이다. 다음해 그의 첫 개인전에 출품된 이 작품은 문자와 미학 사이의 긴장 상태를 보여준다. 즉 시각적 오브제로 변모한 시집은 사람들에게 의해 읽혀져야 하는 시집/텍스트의 기능을 상실했다. 하나의 미학적 형태로 재탄생된 작품은 표지 안의 텍스트를 읽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전시 당시 회반죽 안에 파묻힌 미술작품 `비망록` 옆에 시집 `비망록` 한 권을 비치해 놓았지만 시집 속 `텍스트`는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것 또는 그런 책자를 `비망록`이라고 하던가. 잊혀지면 안될 중요한 것들이 빗물로 지워지거나 오브제로 변해 읽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브로타에스의 두 작품은 우리에게 시 혹은 문자, 글, 말 등의 언어와 이미지 간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오늘 이 두 작품을 보며 억지스러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브로타에스의 두 작품에서 나는 단정하고 명료하지만 시끄러운 `언어`의 일면과 침묵과도 같은 `이미지`의 일면을 본다. 단정하고 명료한 언어는 듣는 이의 입장에 따라 온갖 억측과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변명을 동반할 때도 더러 있다. 내용은 없이 반지르르하고 유려한 언어는 상대를 현혹하며 자신의 입장만을 강요하기도 한다. 반면, 침묵과 같은 이미지는 단정이나 명료보다는 때론 역설과 모순을 드러내며 일반적인 관습과 가설, 관념 등을 깨고 대화적 상상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 나의 입장보다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하기도 하고 나의 상황을 대입해 보기도 한다.
내용없는 말보다 깊은 사유의 침묵이 그리운 계절이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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