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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그럴 수도 있지' 의 힘

2019-05-23기사 편집 2019-05-23 08: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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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무더위가 빨리 시작되고 폭염이 많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다. 추위보다 더위를 더 많이 타는 나는 벌써 은근히 두려워진다. 여름에 나는 주로 가벼운 옷을 입고, 에어컨이 있는 실내를 찾아다닌다. 또 겨울에는 난방이 너무 세게 켜진 장소에서는 조용히 일어나서 직접 실내 온도 조절을 하고, 목이 조이며 높이 올라오는 터틀넥 티셔츠는 답답해서 잘 입지 않는다.

나는 겁도 많은 편이라 치과에 진료를 위해 가면 치과 치료 도구들이 내는 소리와 진동 등이 너무 무서워 치료 중 애꿎은 내 손등을 꼬집게 된다. 치과 진료가 끝나고 나올 때면 정작 치료받은 곳의 아픔보다 손등의 아픔이 더 오래 남기도 한다.

사람들은 개인마다 특정 감각이 예민하기도하고 또 다른 감각은 둔하기도 하다. 미각이 예민해서 좋아하는 맛과 싫어하는 맛이 분명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청각이 예민해서 다른 사람보다 소음에 민감한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사람보다 불안감을 더 심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그런 신체 감각과 감정 등을 조절하기 위해서 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한다. 실내 온도를 높이거나, 옷을 얇게 입고, 또 애꿎은 손등을 꼬집으며 무서움을 잊으려 하기도 한다.

자폐성 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 중 많은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보다 감각적으로 더욱 예민하거나 둔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각이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기도 한다. 말이나 글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큰 소리로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이해할 수 없는 몸짓을 반복하거나, 자신을 때리기도 한다. 흔히 '문제행동' 또는 '도전적 행동'으로 표현되는 행동들이다. 이런 행동들에 대해 부모나 교사들은 중재에 나서게 된다. 손가락을 눈 옆에서 계속 나풀대며 흔드는 행동, 교실에서 앉아있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행동, 손뼉을 치며 몸을 앞뒤로 흔드는 행동 등을 고쳐주려 한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의 이런 행동들이 그들 입장에서는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소음, 온도, 빛, 촉감, 움직임, 혹은 불안감 등을 견뎌내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촉각이 예민한 아이가 옷 안쪽의 상표가 너무도 까칠해서 어쩔 줄 모르고 화를 낼 수도 있고, 습도에 예민한 아이는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컨디션이 나빠져서 계속 울 수도 있다. 청각이 예민한 어떤 아이는 생일파티에 장식해 놓은 풍선을 보고 풍선이 터질까 봐 무서워 입구에서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며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의 행동을 중재할 때 우리는 흔히 '문제행동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행동으로 바꿔주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유난히 더위를 타고 조이는 터틀넥 스웨터를 못 입는 나의 특성은 존중받아야 하고, 더 예민하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은 무시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발달장애인의 특정 행동으로 본인이나 다른 사람이 다치거나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혹은 타인을 크게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다른' 입장을 고려해보면 어떨까. 행동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고치려 할 것이 아니라 그 행동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환경을 고쳐준다면 어떨까. 촉각이 예민한 아이의 옷 안쪽 상표는 미리 떼어주고, 습도에 예민한 아이를 위해 실내공기를 제습해 주고, 청각이 예민한 아이가 함께하는 생일파티에는 풍선을 장식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해 보인다고 발달장애인에게는 생존과도 같은 감각조절 행동들까지 고치려 할 필요는 없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혹은 학교에서 보통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발달장애인이 있다면 멈춰서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보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라고 그냥 보아 넘기면 되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주변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에만 과도하게 신경 쓰며 발달장애인들의 활동반경을 좁힐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강점을 살려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돕길 바란다. 나에게 또 주변사람들에게, 발달장애인에게도 나지막하게 말해보자. "그럴 수도 있지."

전혜인 건양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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