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간학회에서 연사가 들려준 시계에 얽힌 우화가 있다. 포를 쏴서 정오를 알리는 섬이 있었다. 포수가 처음에는 자기 시계에 맞춰 포를 쏘다가 점점 시계가 못 미더워졌다. 결국 포수는 섬의 시계방에 걸려있는 벽시계를 보고 시계를 맞추기로 했다. 포를 이용한 시보 시스템은 한동안 잘 돌아갔고 주민들도 좋아했다. 어느 날 포수의 친구가 놀러와 문제점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시계방 주인은 어디에 시계를 맞췄을까? 포 소리였다.

이 우화는 세상의 모든 시계에 벌어질 수 있는 오류를 풍자한다. 우리는 방송국 시보를 보며 손목시계 시간을 맞춘다. 시보는 어디에 맞추고 있을까? 무언가에 맞출 것이다. 무엇은 또 어디에?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 끝에는 세계의 표준시가 있다. 이 표준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믿어도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행여 내 손목시계에 맞춰지고 있으면 안 되니까.

세계의 표준시는 타임키퍼와 표준시계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손목시계와 방송국 시보 관계처럼 타임키퍼는 일정함과 멈추지 않음을, 표준시계는 정확함을 덕목으로 삼는다. 전 세계에 500 대 정도의 원자시계가 타임키퍼를 만드는 데 참여한다. 빠른 시계, 느린 시계, 들쭉날쭉한 시계 등 별별 시계가 있다. 인공위성으로 연결된 시계들은 서로의 시각을 전송하고 감시한다. 파리에 있는 국제도량형국에 이 데이터가 쌓이면 모든 시계의 평균을 바탕으로 단일한 시간 흐름을 만들어낸다. 개별 원자시계보다 일정한 이 흐름을 자유원자시라고 부른다. 1970년대 도입 후 멈춘 적 없는 지구의 타임키퍼다. 이 시계는 물리적 시계가 아니라 데이터다. 개별 시계가 평균에서 얼마나 빠른지 느린지를 담은 데이터다. 데이터가 어떻게 시계일 수 있다는 걸까? 사실 우리는 옛날부터 데이터 시계를 써왔다. 불과 몇십 년 전 손목시계는 하루에 10분씩 틀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다. 자기 시계가 하루에 얼마나 틀리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시계에 대한 데이터를 가진 것이다. 그러나 어제는 5분 늦게 가고 오늘은 3분 빨리 가는 시계라면? 데이터를 만들 수 없다. 당장 수리를 맡겨야 한다. 자유원자시도 마찬가지다. 절대기준에 대해 흐르는 속도가 달라도 다른 정도가 일관되면 흐른 시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예측이 좋아진다면 데이터에 대해 어떤 조작도 허용된다. 데이터라 편리한 점이다. 덤으로 절대 망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표준시가 아니다.

표준시가 되려면 절대성이 있어야 한다. 절대성은 `초의 정의`에서 온다. 바로 `133 세슘원자의 섭동 없는 바닥상태, 진동수는 91억 9263만 1770 Hz`다. 세슘원자에 전자기파를 쏴 91여 9000여 만 번 깜빡일 때마다 1초인 것이다. 지구에는 이 문장을 글자 그대로 실현하려 만든 10 대 정도의 원자시계가 있다. 만드는 방법이 시계마다 다르고 절대로 서로 참조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인류가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정교하고 신중하게 정확성을 검증한다. 사실 검증받느라 멈춰 있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누적된 시각을 만들지 못한다. 자유원자시를 만드는 원자시계들은 검증을 받지 않는 대신 멈추지 않고 흘러 시각을 만든다. 표준시계는 자유원자시가 흐르는 `속도`를 가끔 감시하면 된다. 감시결과를 이용, 자유원자시의 시각을 더하거나 뺀다. 지구에서 실제 흐른 시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초의 정의`가 주는 절대성, 표준시계가 주는 정확함, 원자시계 500 대가 주는 일정함까지 갖췄다. 국제원자시라고 부르는 세계의 표준시다.

여기에서 다양한 시각체계들이 필요에 맞게 생겨났다. 그중에 생활의 편리를 위해 윤초를 넣어 태양시에 시각을 대략 맞춘 것을 세계협정시라 한다. 세계협정시를 경도 따라 24개 권역으로 나눈 생활 밀착형 지역 시각체계를 만들었다. 손목시계를 맞추는 시각이다. 섬에서처럼 자기 참조의 오류는 없다. 믿고 써도 된다.

박창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표준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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