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철학교육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른들도 어려운 철학을 어린이에게 가르친다는 거냐?" 또는 "어린이에게 주역을 가르치려는 거냐?"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철학교육은 성인보다상상력과 호기심이 많은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효과가 더 잘 나타난다. 이유는 초등학교 학생들은 대학생보다 정답 찾는 교육에 덜 노출되어 있어서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주변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궁금증이 없이 "당연하지 뭐"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철학적 사고는 이미 물 건너간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대상의 철학수업에서 5명의 학생들이 따돌림에 대한 동화를 읽고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따돌림 문제의 경우 따돌림을 시키는 사람이 거론돼 비난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수업에서 선생님은 "혹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은 문제가 없을까?"라는 도발적인 궁금증을 제기했다.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는 의도의 질문이었다. 잠깐의 따돌림 경험이 있다는 한 학생은 "사실 제가 남에게 학용품을 빌려주는 걸 싫어했거든요. 저를 따돌렸던 친구는 제가 친구 사이에 사소한 것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게 서운해 저를 피하고 따돌렸을 지도 몰라요."라고 대답했다. 이 학생은 "이제까지는 나를 따돌렸던 친구를 미워했지만, 철학 수업을 통해 그 친구의 입장이 되어 학용품을 빌려주지 않았던 나를 돌이켜보게 됐다. 나의 생각주머니가 커졌다"는 내용의 철학 일기를 작성했다.

어린이철학교육은 토론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예컨대 장발장을 읽은 아이들이 "배고픈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친 장발장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일까"라는 문제를 제기하면 어떤 아이는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아이는 "예외 없는 규칙이 있을 수 있느냐"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이런 토론을 통해 학교에서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배운 아이들은 비로소 규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열띤 토론을 하다 보면 처음엔 본인의 주장만 강하게 주장했던 아이가 다른 아이의 주장과 생각을 접하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이어 학년이 올라가면 책의 장르를 넓혀 역사와 고전 등으로 확대해 지식과 더불어 토론의 질을 향상해 나가는 것이다.

또한 철학교육은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는 환경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가정에서 역할이 중요하다. 즉 아이들이 질문하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정답이나 진리를 말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자연스럽게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가족의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 아이의 생각을 어떤지 물어보는 방식으로 시작하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와 근거를 말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초·중·고에서 철학교육은 실시되고 있지 않으며 어린이철학교육은 사교육을 통해 진행된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 특히 유럽의 경우 철학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고등학교졸업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첫날을 4시간짜리 철학시험으로 시작한다. 철학시험에 등장하는 질문들은 대략 이런 것이다. `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 행동일 수 있는가?`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예술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이 시험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논리로 펼쳐보라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는 초·중·고의 모든 학과에서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서술하고 자신의 논리로 펼쳐내는 훈련을 진행한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왕성한 어린이들이 정답만을 찾아가는 교육과정에 익숙해지고 고착되기 전에 "왜?"라는 질문을 왕성하게 던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상호간에 토론하는 과정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사고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풍토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정영기(호서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