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집어 넣으면 본능적으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릴 터다. 찬물에 넣은 뒤 서서히 수온을 올리면 어떻게 될까. 별다른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결국 팔팔 끓는 물에 익어 버리고 말 터다. 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타성에 젖어 있다가 맞게 되는 운명이다. 대전 경제를 떠올리게 한다면 지나친 걸까. 냄비 속 개구리 같은 무사안일과 타성이 지역경제를 뒷걸음질 치게 하는 건 아닌 지 돌아볼 시점이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대전`이라는 슬로건은 알짜 기업의 탈(脫)대전 가속화로 무색해졌다. 과거 대전산업단지를 대표하던 삼영기계와 동양강철 등이 떠난 지 오래다. 다목적 도로관리차 생산업체인 이텍산업과 광학기기 제조업체 에스피오, 세탁세제 전문업체 화인TNC가 세종시에 둥지를 트는가 싶더니 화장지로 널리 알려진 중견기업 미래생활이 같은 길로 갔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창업을 해 지역경제의 버팀목이 돼온 기업들이다. 공공기관의 엑소더스가 더해지면서 먹구름이 더 짙어졌다.

암울한 실상은 여러 지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7년 기준 대전지역 중견기업 수는 모두 85개(제조업 55개·비제조업 30개)로 다른 광역시보다 유독 적다. 도시 규모가 대전에 비해 적은 광주시도 90곳이다. 실업률은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충청지방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실업률은 5.3%로 전년도 동기대비 1.1%포인트 올라갔다. 실업자는 4만 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000명(27.0%) 늘었다. 산업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줄줄이 대전을 등지니 설상가상이다.

시가 뒤늦게 산업단지 조성에 진땀을 흘리는 건 만시지탄이다. 당장 서구 평촌산단(54만 6000㎡)과 대덕평촌지구, 장대도시첨단산단 조성 작업이 한창이고, 50만 2000㎡ 규모의 안산첨단국방산단이 2021년 상반기 중 분양에 들어간다. 부지확보를 위해 탈대전을 꾀하는 기업의 제동 장치가 되면 좋으련만 떠날 기업은 이미 떠났다는 게 문제다. 고용유발 효과가 큰 산단의 저가 분양과 함께 다른 시·도 같은 파격적 지원책이 없다 보니 맞게 된 현실이다.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4차산업혁명특별시 대전`만 해도 그렇다. 시가 지난해 내놓은 `4차 산업혁명 육성 과제전략`이 대표적이다. 4차산업혁명 투자로 모두 6조 6000억 원의 경제적 부가가치 및 3만 6000개의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지만 얼마나 진척됐는 지 의문이다. 구호는 멋진 데 그 실체가 와 닿지 않아 공허감이 적지 않다. 대덕특구의 우수한 인재와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하면 벤처캐피털이 모여들어 스타트 업 열풍이 불텐 데 서말 구슬을 못 꿴다. 허태정 시장이 실리콘밸리를 다녀왔으니 결과물을 기대해도 될까. 해법을 찾으려면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신동빈 롯데회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듯 대전 기업인부터 칙사 대접하라.

지난 3월 대전을 떠나 충격을 안긴 골프존의 사례는 시사점이 의미심장하다. 국내 스크린골프 산업을 선도하는 골프존은 2000년 카이스트에서 탄생해 성장한 향토벤처기업이다. 2011년 코스닥에 상장하며 연 매출 2000억 원 대의 중견기업으로 컸다. 탈대전인지, 서울행인지 논란 속에 "정말 기업하기 힘든 곳이 대전"이라는 말이 지역경제계에서 한동안 떠돈 사실은 이전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인디언들은 초원을 달리다가 수시로 말에서 내려 좌표를 확인했다고 한다. 속절없이 기업을 떠나보내고, 4차산업혁명도시로 가는 발걸음은 굼뜨기만 한 시가 해야 할 일이다. 더 늦기 전에 기업우대정책 전반을 재점검 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어야 한다. 빌 클린턴이 1992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을 상대한 무기는 하나였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지방자치단체라고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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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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