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김희곤 지음/ 미술문화/ 336쪽/ 2만 원

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
지난 14일 문화재청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충남 논산 돈암서원 등 한국의 아홉 곳의 서원을 한 데 묶은 `한국의 서원`이 재수 끝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권고 통보를 받았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전파를 이끌고 건축의 정형성을 갖췄다는 점이 서원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제시됐다. 한국의 서원은 국가 문화재를 넘어 세계인의 유산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서원(書院)이라는 명칭은 당나라 현종 때 세워진 여정전서원과 집현전서원에서 유래했다.

초기 이들 서원은 서적을 구비한 일종의 관립도서관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서원의 형태는 1000여 년 전인 북송(960-1127) 초기 백록, 석고, 응천, 악록으로 불린 4대 서원에서 유래한다. 오늘날 호남성 장사시의 악록서원이 스스로 천년학부라고 부르며 중국 서원의 효시라고 자랑한다. 이후 남송시대 주희가 백록동서원을 중건해 서원의 제도를 확립했고 이를 본거지로 해 활발한 강학활동을 펼치면서 서원이 널리 보급됐다.

선현의 삶을 공간에 녹여낸 아홉 곳의 서원은 모두 다른 건축 구조와 공간 배치를 보인다. 주자와 퇴계 이황이 서원의 배치 규정을 정립했으나 한국의 서원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제향자의 삶과 지형 조건에 따라 변화를 주었다. 원칙에 따르면 사당은 강당 동쪽에 위치해야 하지만 도동서원에서 사당은 강당 바로 뒤에 위치한다. 의리의 유학자였던 김굉필 선생의 사상을 직선축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사당은 강당보다 높은 곳에 지어야 한다는 전저후고의 원칙도 항상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필암서원의 경우 평지에 위치해 사당을 높은 곳에 지을 수 없었다. 대신 사당을 따르는 모든 건물을 사당 쪽으로 개방하고 반대편은 판벽으로 막아 예를 표했다. 옥산서원은 마당을 일부러 건물로 틀어막은 뒤 강당의 대청마루에서 경관을 열어 극적인 효과를 노렸고 병산서원은 뻥 뚫린 누각으로 병산을 품어 산의 살기를 극복했다.

한국의 서원에 제향된 아홉 명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암울한 시대에 민족의 방향을 제시한 선각자들이다.

공자를 제향한 향교의 대항마로서 탄생한 한국의 서원은 우리 민족의 스승을 제향해 정신의 독립을 쟁취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아홉 개의 서원은 단순한 건축 공간이 아니다. 자연 속에 선각자들의 사상과 철학을 씨실과 날실처럼 조밀하게 엮어 독창적인 작품으로 승화한 빼어난 산수화와도 같다.

한국의 서원은 선각자의 혼이 담겨있는 오래된 미래다.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의 철퇴를 피해 살아남은 한국을 대표하는 아홉 개 서원은 단순히 조선시대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미래 유산이다.

저자는 "한국의 서원에는 산업화의 맷돌에 갈리고 찢긴 우리 민족만의 혼이 잠들어있다"며 "어제는 역사이고 오늘은 선물이다. 오늘의 선물은 역사의 강줄기를 따라 미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민족의 유산에 숨어있다"고 말했다. 강은선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강은선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