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의 문화산책] 나누는 음식, 나누는 정

2019-05-14기사 편집 2019-05-14 08: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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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끼줍쇼'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저녁식사 시간 무렵, 연예인 MC와 밥동무가 무작정 초인종을 누르고 '한 끼' 허락을 구하면 꼭꼭 닫힌 문이 열리고, 밥상이 차려진다. 때로 대가족의 떡 벌어진 12첩 반상이 나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홀로족의 컵라면을 나눠 먹기도 한다. 저녁 밥상을 함께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별의 별 사연들이 다 나온다. 희한하게 밥 앞에서 만나면 누구나 살짝 무장해제가 되는 것 같다.

"한 끼 줍쇼." 우리 세대에서 '거지'는 개그프로그램이나 사극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부모님들 세대에서는 흔한 광경이었다고 한다. "밥은 해놨나?, 상 한번 차려 보소"라고 말하는 호탕한 거지,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떼로 다니던 거지들까지. 전쟁 직후 모두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지만 그 땐 또 다들 집에 오는 거지들을 그냥 보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먹을 걸 안 주면 욕을 해서 그랬는지, 아이를 잡아 약에 쓴다는 근거 없는 '문둥이 이야기'가 무서워 그랬는지, 혹 그냥 돌려보내면 복이 나간다는 믿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이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배려와 마음이었을 것이다.

유독 우리 조상들은 '정(情)'을 음식으로 나눴던 것 같다. 최고의 우애를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사이'로 꼽을 만큼 말이다. 어렸을 적, 엄마는 제사 때마다 전이랑 나물을 이웃집에 돌리셨다. 커다란 쟁반에 사기그릇, 수저까지 한 상을 챙겨 1층 경비실까지 다녀오면서 "아니, 요즘 밥 못 먹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라며 툴툴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엔 집집마다 돌아가며 반상회도 하고, 새로 이사 오는 이웃들은 이사 떡을 돌리면서 신고식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것도 낯설다. 이사 떡을 돌리러 갔다가 아기가 깼다고 화를 내면서 문 앞에 놓고 가라는 얘기까지 들었다는 어느 네티즌의 이야기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무서운 세상 탓에 나조차 아이한테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절대 받아먹으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이른다. 서양에서는 이런 면에서 매우 철저하다고 하는데, 아이가 간식을 가져가지 않은 날에도 절대 다른 친구들의 간식을 나눠 먹지 못하게 교육한다고 한다. 혼자 못 먹은 아이는 짠하고 선생님은 야박하다 싶지만, 위생적으로도 안전하지 못하고 식품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나름 수긍이 된다.

직장인의 회식문화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데, 이런 상황에서 문유석 판사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녁 회식 하지 마라. 젊은 직원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돈 있다. 친구도 있다. 없는 건 당신이 뺏고 있는 시간뿐이다. 할 얘기 있으면 업무시간에 해라. 괜히 술잔 주며 "우리가 남이가" 하지마라. 남이다. 존중해라. 밥 먹으면서 소화 안 되게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자유롭게들 해 봐"라고 하지마라. 자유로운 관계 아닌 거 서로 알잖나.' 정도 없고 각박한 세상이 좀 슬프지만 이것도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문화가 아닌가 한다. 그래도 비록 음식을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정'은 나누고 살았으면 좋겠다.

김기남 대전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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