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끼줍쇼`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저녁식사 시간 무렵, 연예인 MC와 밥동무가 무작정 초인종을 누르고 `한 끼` 허락을 구하면 꼭꼭 닫힌 문이 열리고, 밥상이 차려진다. 때로 대가족의 떡 벌어진 12첩 반상이 나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홀로족의 컵라면을 나눠 먹기도 한다. 저녁 밥상을 함께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별의 별 사연들이 다 나온다. 희한하게 밥 앞에서 만나면 누구나 살짝 무장해제가 되는 것 같다.

"한 끼 줍쇼." 우리 세대에서 `거지`는 개그프로그램이나 사극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부모님들 세대에서는 흔한 광경이었다고 한다. "밥은 해놨나?, 상 한번 차려 보소"라고 말하는 호탕한 거지,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떼로 다니던 거지들까지. 전쟁 직후 모두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지만 그 땐 또 다들 집에 오는 거지들을 그냥 보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먹을 걸 안 주면 욕을 해서 그랬는지, 아이를 잡아 약에 쓴다는 근거 없는 `문둥이 이야기`가 무서워 그랬는지, 혹 그냥 돌려보내면 복이 나간다는 믿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이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배려와 마음이었을 것이다.

유독 우리 조상들은 `정(情)`을 음식으로 나눴던 것 같다. 최고의 우애를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사이`로 꼽을 만큼 말이다. 어렸을 적, 엄마는 제사 때마다 전이랑 나물을 이웃집에 돌리셨다. 커다란 쟁반에 사기그릇, 수저까지 한 상을 챙겨 1층 경비실까지 다녀오면서 "아니, 요즘 밥 못 먹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라며 툴툴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엔 집집마다 돌아가며 반상회도 하고, 새로 이사 오는 이웃들은 이사 떡을 돌리면서 신고식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것도 낯설다. 이사 떡을 돌리러 갔다가 아기가 깼다고 화를 내면서 문 앞에 놓고 가라는 얘기까지 들었다는 어느 네티즌의 이야기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무서운 세상 탓에 나조차 아이한테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절대 받아먹으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이른다. 서양에서는 이런 면에서 매우 철저하다고 하는데, 아이가 간식을 가져가지 않은 날에도 절대 다른 친구들의 간식을 나눠 먹지 못하게 교육한다고 한다. 혼자 못 먹은 아이는 짠하고 선생님은 야박하다 싶지만, 위생적으로도 안전하지 못하고 식품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나름 수긍이 된다.

직장인의 회식문화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데, 이런 상황에서 문유석 판사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녁 회식 하지 마라. 젊은 직원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돈 있다. 친구도 있다. 없는 건 당신이 뺏고 있는 시간뿐이다. 할 얘기 있으면 업무시간에 해라. 괜히 술잔 주며 "우리가 남이가" 하지마라. 남이다. 존중해라. 밥 먹으면서 소화 안 되게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자유롭게들 해 봐"라고 하지마라. 자유로운 관계 아닌 거 서로 알잖나.` 정도 없고 각박한 세상이 좀 슬프지만 이것도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문화가 아닌가 한다. 그래도 비록 음식을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정`은 나누고 살았으면 좋겠다.

김기남 대전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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