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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이야기] 시대를 기억하는 말들 Ⅱ

2019-05-09기사 편집 2019-05-09 08: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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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사촌의 결혼을 핑계 삼아 서울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여의도 공원을 거닐며 도심 속에서 이렇게 트인 곳을 즐길 수 있으니 서울 사람들이 내심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높게 솟아 있는 아파트들을 보고 나니 부러운 마음은 불식 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10여 년 전 인천에서 대전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눈여겨봤던 것 중 하나는 아파트 이름이었다. 대전 지역의 아파트 이름은 대개 정겨웠다. 서구 일대의 '상록수', '목련', '무궁화', '둥지'와 같은 이름의 아파트들이 이전에 살던 곳의 '현대', '풍림', '범양'처럼 기업 이름으로 세운 아파트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전해왔던 것이다. 물론 '공작', '한마음'처럼 다정한 이름을 가진 아파트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아파트들이었기 때문에 대전의 큰 단지 아파트들이 이러한 이름을 내걸고 있다는 것이 크게 다가왔던 듯하다.

그러나 지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아파트 이름에서도 시대가 변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즉, 이전까지 이름들이 '강(江)'을 뜻하는 '가람'처럼 순 우리말로 지어졌거나 '초원'과 같은 한자어를 사용하여 명명하였다면, 근래에는 대전 동구에 새로 형성된 '이스트시티'처럼 기어코 외래어로 바꾸어 이름 짓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아파트 이름들은 '아파트'라는 건축 형식에 걸맞게 그 이름의 형식도 변해가고 있다.

아파트의 이름 짓기 변화는 더 이상 아파트가 단순한 주거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해준다. 아파트는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자동차와 마차가지로 주거하는 사람을 대신 표현해주는 보조재의 역할도 수행하는 것이다. 이에 '프리미엄'이라고 일컫는 고급 주거공간을 표방하여 '롯데캐슬', '엑솔루타워'처럼 차별화된 주거 공간으로 소구하여 이끄는 것이다.

또한 그 주변 환경을 고려한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아파트를 선택할 때 교육 환경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을 반영하여 서산에는 '금호어울림 에듀퍼스트'라는 이름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웰빙' 바람이 불면서 친환경을 지향하는 주거공간으로 견인하려는 이름도 많이 나타난다. 대전 동구에 곧 세워지는 '에코포레'는 'eco'와 'forest'를 합쳐 만들어낸 이름이다. 또한 트리플로 많은 이들이 잘못 부르고 있는 유성구의 '트리풀시티'도 'tree'와 'full', 'city'가 합쳐져 된 것이다. 이외에도 역세권을 부각하려는 이름, 문화생활을 내세우려는 이름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모습을 겪는 것은 아파트 이름뿐 만은 아니다. 유성의 '열매마을', 서구의 '경성큰마을'로 조성되던 단지 이름도 새로 세워지는 곳에서는 '**시티', '**타운', '**블록'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는 길 설명할 때에도 '3블록 지나서 가시면 됩니다.'처럼 서구식 안내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2017년에 시공능력평가 순위 30대 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 가운데 순우리말은 '꿈에그린', '하늘채', '어울림', '사랑으로' 등 4개 안팎으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어느 책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아파트 이름을 외래어로 지음으로써 이름을 좀 더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지으려는 것에서 기인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렇듯 아파트 이름에서도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단면이 존재한다. 이 모습을 두고 일부에서는 아파트 이름에 외래어를 사용하는 현실, 그리고 의미 부여를 위한 억지스러운 이름 짓기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번 글감이 시대를 알아볼 수 있는 우리말의 단면이기에 이러한 실태를 관망하는 것뿐이지, 안타까움을 감추기는 어렵다. 굳이 '중앙'을 두고 '센트럴'로 바꾸어야 고급스러운 것인지, '둥지'나 '보금자리' 대신 '네스트(NEST)'를 써야 우아한 표현이 된다는 의식이 만연해지는 현실이 너무도 애석하다. 이 즈음해서 10년을 넘게 '사랑으로'라는 이름을 고집하고 있는 곳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다.

박원호 한남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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