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지난 달 30일 허태정 대전시장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 서울 집무실을 찾아 중기부 대전 잔류를 요청했다. 허 시장의 주문이 박 장관에게 통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보통 사안이 민감할 경우 시인도 부인도 않는 수사적 표현으로 갈음한다. 당일 박 장관의 관련 워딩이 인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굿이너프(충분히 좋은)`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는 심증이 짙다.

대전시는 두 사람 회동 사실을 박영선(좌)·허태정(우) 구도의 투샷 사진과 함께 빠르게 언론에 배포했다. 허 시장 동정치고는 소재가 괜찮고 발로 뛰는 이미지 효과도 기대했음 직하다. 다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쟁점현안인 중기부 대전 잔류, 역으로 말해 세종시 이전 소문을 상쇄시킬 정도로 `현상유지(status quo)`로 간주될 만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보수적으로 평가해도 기 싸움에서 밀렸을 수 있다.

14개월 재임한 1대 홍종학 전 장관 시절에도 비슷한 조직 내부 기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홍 전 장관은 전략적 무관심으로 대응했던 것 같고 대전시도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지난 달 8일 박 장관 취임 이후 중기부 이전설에 힘이 실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4선 의원 출신의 장관 추진력에 대한 중기부 구성원들의 기대감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이에 부응하듯 박 장관은 지난 달 16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중기부 세종시 이전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 안건으로 올린 것은 아니라 해도 박 장관이 입장을 개진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중대하기 짝이 없다. 국무회의는 국정 사안을 심의·의결하는 최고 기구다. 그런 자리에서 박 장관이 중기부 세종시 이전을 언급한 마당에 자신의 말을 주워담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어쩌면 박 장관의 의중은 상당 정도 경도돼 있을지 모른다. 그를 찾아가는 것은 자유 의사지만 문제는 논리적으로 설득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허 시장이 중기청 시절을 포함 대전 생활 20여 년 감성을 자극하고 비(非)수도권간(대전→세종) 공공기관(중기부) 이전의 부당함도 설파하는 수고를 거듭한다 해도 박 장관 계산법이 다르면 허시장이 쥐고 있는 옵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중기부 이전 이슈에 대해 대전시도 전략적 사고를 한층 가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박 장관 관련 주요 일정에 대한 정보력과 정무적 판단능력에서 뒤지고 들어가면 곤란하다. 박 장관의 세종시 이전 관련 발언만 해도 이를 놓쳤다면 사후 피드백 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박 장관은 중기부 이전에 관한한 최고 수준의 정보를 쥐고 있는 인사다. 마땅히 그의 주요 동선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또 특이한 발언 내용에 대해서도 진의 확인 노력을 기울여야 나중에 낭패를 보지 않는다.

박 장관은 정치인 DNA 색채가 강한 편이다. 2기 내각에 합류한 이상 내년 4월 총선 패싱은 불가피하겠지만 장관직을 마친 이후 정치적 꿈은 유효하다고 봐야 한다. 그런 박 장관이라면 소속 부처인 중기부 구성원의 집단정서를 억누르기보다 문제 해결사로서의 역할에 강한 유혹감을 느낄 수 있다. 대전시도 상대의 이런 내면을 꿰뚫고 있어야만 여러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데 유리하다.

중기부가 대전청사를 떠나서 얻어지는 편익 총량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세종시와 BRT로 연결돼 있고 대전 도시철도 연결도 추진되고 있어 공간적으로 더 가까워진다. 앞으로 일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노릇인 것은 맞다. 허 시장도 스텝이 꼬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여차지 하면 중기부가 방을 빼겠다고 나오는 마당에 `공무도하(公無渡河)`만 읊조린다면 부작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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