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길을 걷다 보면 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들을 보게 된다. 보면서 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길을 걷다 문득 생각이 나서 담배를 꺼내 들었을까? 혹은 길거리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무료한 마음을 달래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게 되었을까?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필터를 통해 가슴 가득 들이켰다가 길게 흰 연기를 내뿜으며 세상사 시름을 날렸겠지. 아니, 어쩌면 그냥 무심코 습관처럼 피웠을 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쨌든 감도는 담배 연기 속에 소소한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다. 그 즐거움의 부산물로 남은 길거리 꽁초들이다.

담배는 대표적인 기호품이다.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흡연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담배갑에 있는 혐오 사진과 경고문은 거의 위협적인 수준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금연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계속 흡연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흡연 자체가 가지는 장점과 단점, 이익과 해악을 충분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의 흡연은 오로지 개인의 선택이다. 우리 사회에서 음주는 여러 모임에서 간혹 강요받을 때가 있지만 흡연은 그렇지 않다. 요컨대 담배를 피우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결정에 의한 것이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선택은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담배꽁초 길거리 투척은 존중 받아야 할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모든 흡연자들과 관련된 얘기는 아니다. 길거리에서는 가급적이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혹 피우더라도 뒤처리를 잘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일부에 있다. 그런 행위가 기본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고, 심지어 경범죄 처벌 대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좀 망설여지지 않았을까? 한 두 번의 망설임 후에 마침내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버리게 되지 않았을까?

작은 편의를 위해 꽁초를 버리곤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길거리에 무언가를 버리는데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아질 수 있다. 꽁초에서 시작해서 담배갑, 휴지, 사탕 껍질, 테이크 아웃 음료잔 등으로 버리는 물건의 다양화가 이루어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윤리학이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행위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때, 담배꽁초 투척으로 인해 당사자 개인의 윤리의식이 저하될 위험이 다분히 있다.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유롭고 조화롭게 살아가는데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적다 보니 솔직히 필자도 찔리는 구석이 있다. 보행 중 길바닥에 가래를 뱉는 일이다. 가래의 원천이 우리 기관지나 폐에서 걸러진, 호흡한 공기 중의 먼지나 이물질이 녹아있는 점액질이라는 것을 알기에 입에 고이는 가래침을 그냥 삼키기는 껄끄럽다. 사실 삼키더라도 위산에 의해 가래침 내 위해 성분은 거의 없어지지만, 과량이 들어갈 경우 몸에 좋을 일은 없기에 진한 가래가 많이 올라올 때는 아무래도 삼키기가 망설여진다. 외출 시 평소에도 가래가 간혹 나오지만 먼지가 심한 날이면 그 빈도가 잦아지게 된다. 밖으로 나온 가래침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분해된다고, 담배꽁초와는 다르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곤 한다. 하지만 행인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면에서는 담배꽁초나 가래침이나 다를 바가 없다. 길 가운데 놓인 누런 가래침을 보거나, 혹은 운 나쁘게 밟기라도 한다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요컨대 길거리에 가래침을 함부로 뱉지 않는 것도 지켜야 할 사회 규범 중 하나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필자도 길거리 가래침 처리에 있어서는 빈약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어느 날 문득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가래 통을 들고 다녀보았다. 가래가 나올 때마다 통을 꺼내서 열고, 뱉고, 닫는 일련의 일들을 반복하기란 너무 번거롭고 불편했다. 며칠 만에 가래 통은 포기하고 공공 규범 준수와 생활 편의성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을 보았다. 일단 어지간한 경우에는 가래침을 뱉지 않고, 침으로 희석시켜서 그냥 삼키기로 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실내에서 휴지통이 주변에 없을 때 종종 삼키기도 하니까 생각해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먼지가 심해 많은 양의 가래가 나오거나, 콧물이 계속 구강으로 넘어와 밖으로 뱉을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행인들이 지나다니지 않을 곳을 골랐다. 예를 들면 하수구나 가로수 주변, 경계 목 바깥 또는 화단 등이다. 무심코 뱉는 일은 이제 없어졌다. 내가 뱉은 가래가 행인들의 눈에 띌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밟는 일은 없게 되었다.

사실 필자가 길거리 가래침 처리나 담배꽁초 투척에 얽힌 윤리의식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은 가래침이나 담배꽁초로 인해 생긴 윤리의식의 작은 균열이 커다란 크랙으로 진행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주변을 위한 의식적인 작은 배려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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