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환자가 오지 않았다. 예약된 시간이 지나 환자에게 전화했다. 신호음만 들렸다. 혼자 살던 환자는 타지에 사는 남동생이 유일한 보호자였다.

그에게 연락해볼까 하다 함께 거주하는 보호자가 아니라 환자의 일정을 잘 알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에 생각을 거두고 다른 일을 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도 내내 그 환자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직감이 좋지 않았다. 그는 남은 평생 혈액투석을 해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부정과 분노가 있었지만, 치료과정이나 의료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성실한 모습을 보여 왔던 환자였다. 예고도 없이 안 올 리가 없었다. 보호자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는 퇴근하는 길에 형님네로 가보겠다고 했다.

좀 더 빠른 방법을 물었지만, 사정이 있다는 말에 더 부탁하지 못하고 연락 달라는 말을 남긴 후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까지 환자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또 보호자와 통화를 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형님에게 가볼 수 없었다고 했다. 몇 번의 통화 끝에 다른 도움 방법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기다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환자의 상황은 응급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환자의 보호자가 어느 정도 일정을 마무리하고 환자를 찾았는데, 의식이 없는 채로 거실에 쓰려져 있었더란다.

보름 정도 중환자실과 병동 치료를 거쳐 집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여 일이 지났을까. 또 예약된 시간에 환자가 오지 않았다.

한 시간을 기다리다 전화를 했는데 역시 신호음만 들렸다. 연락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보호자에게 전하자 보호자는 이전과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전화를 끊고 바로 119 안전신고센터로 도움을 요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의식이 없는 채로 쓰려져 있어 응급실로 이동시키겠다는 구급대원의 연락을 받았다.

환자는 다시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로 입원했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 긴 여행과 같은 인생을 두고 50대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너무 아쉬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환자는 입원 치료를 마치고 남동생과 조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퇴원했다. 환자나 보호자는 그들의 동의 없이 119를 호출하고 응급치료를 한 것에 대해 의료인 에게 별 탓을 하지 않았다.

십여 년 전, 병동에서 있었던 일이다. 말기 암 환자인 할머니는 병실에서 면회객도 없이 홀로 하루하루 병상 생활을 이어가다 생명이 위독한 상태가 됐다.

입원할 때 보았던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 상황을 전달하고 급히 와 달라고 요청했다. 알겠다는 대답과는 달리 바로 오지 않았다.

차일 피일 병원 방문을 미루던 보호자는 근무자가 바뀔 때마다 전화하기를 몇 번 거쳐서야 다른 가족 한 명을 데리고 병원에 왔다.

병원에서는 보호자를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의 들리지 않는 숨결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할머니는 보호자들을 볼 순 없었지만 곁에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는 것이 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필자는 의무나 책임을 떠나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 늘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의식하고 따르는 것 같다. 임상경력에서 오는 직감적인 일들이 밝은 쪽으로 향하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라는 그 기다림이 길어지지 않고 현실로 나타나기를 희망 한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불안이나 초조함이 아닌 즐거운 기다림으로 만날 수 있으면 한다.

이선미 을지대학교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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