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2월 3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책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소가 설립되고 같은 해 3월 1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4호관에서 문을 열었다. 당시 138명의 인원과 7400만 원의 예산으로 시작한 연구소가 오늘날 인원 1500여 명, 연간 예산 5000억 원을 웃도는 규모로 성장했다. 2019년은 1959년에 설립된 원자력연구원이 60돌을 맞이하는 해다. 사람의 나이가 61세에 이르게 되면 이를 회갑 또는 환갑이라고 한다. 이는 자기가 태어난 간지(干支)의 해로 돌아왔다는 뜻으로 큰 잔치를 벌려 축하한다. 명리학에서는 사람이 태어난 생년, 월, 일, 시의 네 간지, 즉 사주에 근거해 운명을 추리한다.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간지는 그 최소공배수인 60년을 주기로 반복된다. 따라서 60년은 여러 조합을 거쳐 최초의 간지로 돌아오는 마무리이자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지난 4월 9일 연구원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는 기회를 가졌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개발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1980년대 들어 원자력발전이 본격화되면서 핵연료 국산화를 추진해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1990년대에는 연구용원자로인 하나로의 설계 및 건조, 한국 표준형원전의 설계 자립을 주도했다. 이러한 기술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에는 요르단에 연구용원자로를 수출하고 자체 개발한 소형원전인 SMART를 사우디에 건설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평가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60년간의 연구개발 투자효과는 164조여 원으로 투자대비 16배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60여 년 동안 많은 어려움의 시기를 견디기도 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봐도 60년 동안 갖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경험하는데 하물며 수백, 수천 명이 함께 부대끼면 살아온 원자력연구원에 오죽 사연이 많을까? 1980년에는 국제관계 등을 고려해 연구소의 명칭에서 원자력을 빼고 한국에너지연구소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이후 원자력 평화적 이용의 투명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면서 1989년에 원자력연구소로 명칭을 환원했다. 2004년에는 우라늄 농축실험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돼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에는 방사성폐기물 관리 부실과 화재 등으로 지역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과거의 공과를 뒤로하고 원자력연구원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사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숙명과도 같다. 국민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의 안전을 높이기 위한 기술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환경 변화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원자력산업의 활로를 찾기 위한 수출용 원자로 기술 개발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원자력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원자력기술의 단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반대로 원자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단점을 애써 무시하고 장점만을 드러낸다. 원자력 기술은 단점을 보완하고 해결하면서 지속적으로 키워나가야 할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원자력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편향된 시각을 버리고 관용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도 있듯 보기에 마뜩찮아 보이는 원자력 기술이 미래에 크게 쓰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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