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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서열과 평등

2019-04-23기사 편집 2019-04-23 08: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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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나는 울퉁불퉁한 좁은 길을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나즈막한 산자락 밑에 몇 채의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담한 시골 마을, 내가 어릴 적 나고 자란 충남 공주의 한 시골 마을 풍경이다. 1970년대 초반 내가 어릴 적 우리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닭을 키웠었다. 적게는 몇 마리부터 많게는 몇 십 마리까지…. 닭은 노력에 비해 비교적 가족들의 좋은 영양 공급원으로 큰 역할을 했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담벼락에 개나리가 활짝 피고 봄나물과 봄꽃들이 만개하는 봄이 익을 때쯤이면 마루 끝에 걸터앉아 여기 저기 마당을 거니는 닭들을 바라보곤 했었다. 알에서 깨어난 노란 병아리들은 요리 조리 떼지어 다니면서 먹이를 주워 먹는다. 그러나 한 달여간의 시간이 지나면 병아리 티를 벗고 굵은 깃이 나고 벼슬이 생기면서 그동안 함께 지내던 정다운 녀석들은 얼굴만 마주하면 한바탕 싸움질을 해댔다. 어떤 녀석은 벼슬이 찢어져 피가 날 정도로 심하게 싸우기도 했다. 말려도 보고 내쫓아도 봤지만 자기들끼리의 서열이 정리될 때까지는 싸움이 멈추지 않았다. 서열이 정리되어야 비로소 소란이 멈추고 무리에 평화가 찾아왔다.

어릴 적에 종종 가까이에서 보았던 닭들의 싸움이 닭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사회에 발을 딛고 나이가 들어가며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지금도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었으며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또 보고 있다. 물론 만물의 영장인 사람과 하등동물의 대명사인 닭과 직접적으로 비교될 수는 없지만,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사람들도 어쩌면 조금은 이와 같은 본성과 닮아 있다.

하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한 번 상대방에게 패했다고 해서 평생 패배자 되는 것도 아니고 패배자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자신의 위치를 회복시키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문제가 야기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입학해 우리 동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이웃 동네 아이들과 만나면서 키 재기 같은 서열 경쟁을 하고, 상급 학년, 상급 학교로 가면서 때로는 눈빛으로, 때로는 격렬한 몸짓으로 끝없는 서열 경쟁을 했고, 어쩌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 사는 모든 과정이 여러 가지 다양한 방면에서의 나름대로의 서열정리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 일은 막는다고, 말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집단 구성원들 내부의 역동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에 외부의 힘이 작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옛날의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서열정리는 없어지는 추세이지만, 오히려 기성세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형태의 방법이 난무하며, 때로는 경악스러운 형태의 방법들도 등장해서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아이들의 서열정리 방법은 교묘해지고, 은밀해 지는데 비해 사회나 어른들의 시각은 항상 자기들의 기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자기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과민반응하고, 아이들 다툼이 어른들 다툼으로 번져서 본질을 버리고 오로지 어른들의 다툼에만 몰두하는 상황을 자주 본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서열다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에 어른들은 이러한 서열정리를 인정해주고, 올바른 서열정리 방법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문제가 생기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가정의 부모님이나 사회에서 어른들께 자문을 구해서 가장 보편타당하고, 정당한 방법으로의 서열정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집단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정당한 방법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을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바람직한 서열정리 방법을 익히는 것이 올바른 민주주의의 질서를 익히는 기본이 될 것이다. 혹자는 만인의 평등사회를 만들자는 시대적 조류에 역류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회피하고 묻어두고, 고개만 쳐들고 외친다고 해서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현실 속에 있고, 현실 속에서 모순된 것을 고쳐가면서 발전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의 모든 문제를 막으려고 하기 보다는 문제의 발생 원인을 알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고, 바람직한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모범을 보이는 것이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평등은 결과적 평등이 아니라 진행의 평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영석 대전중리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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