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달리니 꽃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벚꽃, 개나리, 조팝나무, 배꽃, 홍매화, 산당화, 박태기꽃이 한창이다. 하나같이 잎이 나기 전 꽃을 피우는 것들, 화려한 색깔과 군락을 이룬 풍성함으로 길 위 나그네의 시선을 뺏는다.

맑은 하늘,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다다른 호숫가.

사진 찍기 좋게 꾸며놓은 장소도 보이고, 팬지며 튤립이며 가지런히 심어놓은 꽃들이 참하다. 호숫가를 따라 길게 놓인 데크 위를 한가로이 걷는다. 맹그로브 나무처럼 물속에 뿌리를 내린 커다란 나무들이 유록색 이파리를 살랑거린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색깔과 잎의 모양이 조금씩 다른 나무들이 열 지어 서 있다. 왕버들나무, 물푸레나무 정도밖에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없지만, 물결에 일렁이며 서 있는 연초록 침묵이 마음 편하다. 바람에 떠밀린 능수버들 가지가 슬쩍슬쩍 얼굴을 쓰다듬는다. 호수 가장자리로 밀려온 물결의 찰랑거림을 들으며 걷다 보니 고요 속에 홀로인 듯 착각이 든다.

느리게 걷노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너무 작고 흔해 눈길이 가지 않던 것들, 언제 거기 있었는지 존재조차 알 수 없던 것들. 꽃마리, 살갈퀴, 벼룩이자리, 광대나물, 개불알꽃, 벋음씀바귀. 쪼그리고 앉아 요모조모 뜯어본다. 둥글게 휘둘러가며 난 잎사귀들 위로 길다란 줄기가 맹숭하게 솟고, 다시 빙 둘러 돋아난 잎사귀 위로 손가락 마디 만한 줄기가 돋았다. 이렇게 반복된 줄기와 잎새의 배열 위로 좁다란 나팔 같은 자주색 꽃이 힘차게 뻗치고 핀 꽃, 광대나물이란다. 어릿광대가 부는 익살스런 나팔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길고 멋진 넝쿨에 분홍 꽃을 매단 살갈퀴는 갈퀴 같은 덩굴손이 붙어있구나. 연한 하늘색 꽃들이 앙증맞게 달린 꽃마리는 알고 보니 어릴 때 나물로 먹던 꽃다지의 꽃이란다. 핸드폰 카메라로 클로즈업해보니 맑고 귀여운 모양새에 홀딱 반하겠다.

느림의 미학, 발견의 시학. 걷다가 떠오른 글쓰기 감성은 차곡차곡 가슴에 쌓인다. 자동차로 휭하니 스쳐 지날 때는 볼 수 없던 아름다움을 산책길에서 줍는다. 삶도, 사람도, 글쓰기도 가끔은 느리고 지긋한 응시가 필요하다. 침묵에서 소리를, 바람에서 색을 느끼게 될 순간을 위하여.

마기영 수필가, 대전시민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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