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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상의 문화산책]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2019-04-23기사 편집 2019-04-23 08: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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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옛 노래 '사철가'는 이 시절을 녹음방초 승화시(綠陰芳草 勝花時)라고 읊조린다. 푸른 잎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아름다운 때라는 것. 꽃을 소재로 한 비유나 은유는 수사학의 유구한 전통인 것 같다. 오늘날의 가객은 사철가를 이어받아 녹음방초의 자리에 '사람'을 놓는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아름다움의 절대강자로서 꽃은 이런 식으로 미학의 토너먼트에서 의문의 패배를 당하곤 한다.

'우주 만물은 단지 문자와 글월로 표현되지 않은 문장이다.' 연암 박지원의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이렇게 간명하면서도 통쾌한 문장론을 본 적이 없다. 우주만물이 문장이라면 글 짓는 자가 할 일이란 달리 있을 수 없다. 우주 만물을 잘 살피고, 그것이 자아내는 문심(文心)을 보듬어 용을 조탁하듯(雕龍) 그려내면 된다. 이 순서를 잘못 알거나 이 이치에 무지한 사람은 먼저 살피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억지로 문심을 지어낸다. '글은 뜻을 드러내면 그만(文以寫意則止而已矣)'이라는 연암의 이어지는 가르침은 표현에만 치중한 글의 위험을 경계하는 데 뜻이 있다.

그런데 의문이 인다. 그 자체로 문장이라는 우주만물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저 드넓은 우주 만물의 이치와 실상을 어찌 다 속속들이 궁구하고 문자에 담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내는 방법'을 비롯해서 일상생활에 유용한 수많은, 기기묘묘한 방법들을 책 한권으로 묶어 친절하게 알려준 움베르토 에코는 '우주 만물의 이치와 실상을 알아내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은 채 3년 전 '별 너머의 먼지'로 사라졌다. 유감스런 일이다.

사물의 핵심은 격(格)에 있고 '격물'하면 앎에 이를 수 있다고 선인들은 말했다. 우주만물의 격이란 무엇인가. 앞서 살짝 인용한 책, '문심조룡'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람은 천지만물의 정화이며 천지의 핵심이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순환논증의 퍼즐이 맞춰지려 하고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노래의 내용과 형식은 불화한다. 가객은 왜 이 좋은 말을 달콤한 속삭임의 형식이 아니라 절규의 형식에 담았을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누가 그걸 모르나.

그러나 이 노래의 바닥 정서가 왜인지 다급하고 군가식 리듬을 방법적으로 채택한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이 노래가 사랑의 미학이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다'라는 식의 존재의 미학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글 짓는 사람의 마음에 문심이 생기는 이치의 입구까지 왔다. 다시 문심조룡. '그 자체로 아름다운 우주 만물, 그 정화이며 핵심인 사람의 마음, 이러한 것들은 외부에서 가한 장식이 아니라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서 아름답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꽃과 비교해서 또는 외부적 장식을 가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재적으로 이루어진 존재라서 아름답다. 존재의 실상은 외재적이 아니라 내재적 일의성 안에 있다. 글 짓는 사람이 작가의 존재론을 거듭 성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류달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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