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옛 노래 `사철가`는 이 시절을 녹음방초 승화시(綠陰芳草 勝花時)라고 읊조린다. 푸른 잎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아름다운 때라는 것. 꽃을 소재로 한 비유나 은유는 수사학의 유구한 전통인 것 같다. 오늘날의 가객은 사철가를 이어받아 녹음방초의 자리에 `사람`을 놓는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아름다움의 절대강자로서 꽃은 이런 식으로 미학의 토너먼트에서 의문의 패배를 당하곤 한다.

`우주 만물은 단지 문자와 글월로 표현되지 않은 문장이다.` 연암 박지원의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이렇게 간명하면서도 통쾌한 문장론을 본 적이 없다. 우주만물이 문장이라면 글 짓는 자가 할 일이란 달리 있을 수 없다. 우주 만물을 잘 살피고, 그것이 자아내는 문심(文心)을 보듬어 용을 조탁하듯(雕龍) 그려내면 된다. 이 순서를 잘못 알거나 이 이치에 무지한 사람은 먼저 살피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억지로 문심을 지어낸다. `글은 뜻을 드러내면 그만(文以寫意則止而已矣)`이라는 연암의 이어지는 가르침은 표현에만 치중한 글의 위험을 경계하는 데 뜻이 있다.

그런데 의문이 인다. 그 자체로 문장이라는 우주만물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저 드넓은 우주 만물의 이치와 실상을 어찌 다 속속들이 궁구하고 문자에 담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내는 방법`을 비롯해서 일상생활에 유용한 수많은, 기기묘묘한 방법들을 책 한권으로 묶어 친절하게 알려준 움베르토 에코는 `우주 만물의 이치와 실상을 알아내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은 채 3년 전 `별 너머의 먼지`로 사라졌다. 유감스런 일이다.

사물의 핵심은 격(格)에 있고 `격물`하면 앎에 이를 수 있다고 선인들은 말했다. 우주만물의 격이란 무엇인가. 앞서 살짝 인용한 책, `문심조룡`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람은 천지만물의 정화이며 천지의 핵심이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순환논증의 퍼즐이 맞춰지려 하고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노래의 내용과 형식은 불화한다. 가객은 왜 이 좋은 말을 달콤한 속삭임의 형식이 아니라 절규의 형식에 담았을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누가 그걸 모르나.

그러나 이 노래의 바닥 정서가 왜인지 다급하고 군가식 리듬을 방법적으로 채택한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이 노래가 사랑의 미학이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다`라는 식의 존재의 미학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글 짓는 사람의 마음에 문심이 생기는 이치의 입구까지 왔다. 다시 문심조룡. `그 자체로 아름다운 우주 만물, 그 정화이며 핵심인 사람의 마음, 이러한 것들은 외부에서 가한 장식이 아니라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서 아름답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꽃과 비교해서 또는 외부적 장식을 가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재적으로 이루어진 존재라서 아름답다. 존재의 실상은 외재적이 아니라 내재적 일의성 안에 있다. 글 짓는 사람이 작가의 존재론을 거듭 성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류달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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