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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의 문화산책] 우스꽝스런 불멸에의 욕망

2019-04-19기사 편집 2019-04-19 0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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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몸짓을 불멸에 대한 욕망의 몸짓이라 명명하자. 큰 불멸을 갈망하는 베티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현재와 더불어, 현재의 온갖 근심과 더불어 사라지길 거부한다. 나는 나 자신을 초극하여 역사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 역사는 영원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의 장편소설 '불멸' 중의 한 대목이다. 소설은 한때, 괴테와 그의 연인으로 알려진 베티나 폰 아르님 사이의 유명한 에피소드를 통해 불멸을 향한 인간의 헛된 욕망을 그리고 있다. 스물여섯 살의 젊은 여성 베티나는 예순두 살의 대문호 괴테와의 관계를 통해 역사에 새겨질 자신의 이름을 꿈꿨다. 실제로 베티나는 괴테의 연인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괴테는 자신에 대한 베티나의 열렬한 애정이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기 위한 것임을 일찌감치 꿰뚫고 있었다. 그러나 괴테는 그녀가 행여 대문호로서의 자신의 이미지에 먹칠을 할까 두려워 그녀를 완전히 거부하기보다 다소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괴테가 보기에 베티나와 자신의 만남은 그의 전기(Biography)에서 아주 하찮은 하나의 에피소드였다. 그런데 괴테와 베티나의 이 에피소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반전을 일으켰다. 괴테의 특별한 사랑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베티나는 괴테가 세상을 떠난 3년 뒤인 1835년, 괴테와 주고받은 40여 통의 편지를 상상력을 더해 '괴테가 한 아이와 주고받은 편지'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무려 5000부가 팔리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당시의 출판 상황을 고려하면 엄청난 판매량이다. 책의 출간 후 한참 동안 베티나는 드디어 괴테의 연인으로서 불멸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책속의 괴테는 실제 괴테라기보다는 '베티나가 창조한 괴테'다. 천진한 어린아이 같은 베티나, 동시에 무척 관능적이기도 한 젊은 여성 베티나에 흔들리는 괴테, 언제든 베티나를 찬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괴테로 그려져 있다.

그녀가 이렇게 괴테와의 사랑을 조작하면서까지 불멸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괴테가 젊은 시절 한없이 사랑했던 연인이 바로 베티나의 어머니 막시밀리아네 폰 라로슈였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랑하던 여인 막시밀리아네의 결혼 후 상심한 괴테가 쓴 소설이 불후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베티나는 외가에서 십대시절을 보내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괴테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 연애편지들을 읽었다. 외할머니로부터 괴테와 어머니의 사랑이야기를 전해들은 베티나는 괴테를 통한 불멸을 꿈꾸며 그를 만나기 위해 차근차근 철저히 준비했다고 한다. 훗날 괴테가 보낸 편지의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베티나의 심각한 조작과 그녀의 상상력 속 괴테와의 관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베티나의 책 속에는 괴테가 베티나에게 주는 인상적인 조언이 있다.

"네게 바랄 것이 있다면, 현자들이 불멸의 가장 본질적인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 즉 전 인간은 그 자신으로부터 세상의 빛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네가 이 좋은 충고를 가능한 한 따를 것을 간절하게 권하는 바이다."

베티나를 통해 "우스꽝스러운 세속적인 불멸"을 경계하는 쿤데라를 떠올려 본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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