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궁궐 등 우리나라의 전통 목조건축물 표면에는 녹색, 적색 등 다양한 색이 다채로운 문양과 함께 칠해져 있다. 이러한 채색을 `단청(丹靑)`이라고 한다. 단청은 흔히 건축물에 회화적 아름다움을 표한한 수단인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목조건축물의 수명 연장을 위하여 고대부터 발달해온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그 까닭은 건축물의 골격이 목재임에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목조건축물의 부재로 가장 많이 사용된 수종은 소나무로 알려져 있다. 소나무는 재질의 특성상 내구성이 우수하고 습기에 강하며 가공이 쉬운 장점이 있으나 표면이 거칠고 옹이가 많으며 건조 후 갈라짐 등 변형이 크다는 단점도 따른다. 따라서 고대인들은 목조건축물의 사용기간을 연장하기 위하여 쉽게 썩고 갈라지거나 충해에 취약한 목재의 단점을 보완하는 조치를 강구해야만 했다. 그 해결점이 단청이었다. 즉, 목재의 흠결을 감추고 부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부재에 천연 또는 인공의 채색재료를 칠하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이렇게 기능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단청은 이후 채색과 문양의 발달로 건축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기법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단청의 기원은 어디서 찾아 볼 수 있을까? 단청의 기원은 고대단청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정확히 밝히기 어렵지만 옛 문헌사료를 통하여 짐작해 볼 수 있다. 건축단청과 관련한 국내의 가장 오래된 사료는 『삼국사기(三國史記)』로 『삼국사기』 권48 「솔거(率居)」편에서 `단청`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솔거는 진흥왕(540~576) 시대의 화가로 선천적으로 그림을 잘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가 황룡사 벽에 그린 소나무에 관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는데 새와 짐승이 벽에 날아들어 부딪힐 만큼 사실적이었다고 한다. 그 기사를 보면"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색깔이 바래자 절의 승려가 단청(丹靑)으로 덧칠을 하였는데 그 후로는 새들이 다시는 날아들지 않았다."고 기록되어있다. 즉, 벽화를 단청으로 보완하였다는 내용인데 이를 보면 `단청`이라는 용어가 벽화의 개념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 권33 「옥사조(屋舍條)」에서는 신라시대 골품의 등급에 따라 건축의 규모와 장식을 제한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나있다. 왕이 될 수 있는 최상위 신분층인 성골(聖骨)은 건축 규모, 장식에 제한이 없었으나 진골(眞骨), 육두품(六頭品) 등 성골 이하의 신분층에서는 제약이 따랐다. 특히 단청에 사용되는 모든 색을 의미하는 오채(五彩)는 성골만 가능하였으며 진골부터 일반백성은 오채(五彩)를 이용한 건축채색을 금하였다.

단청은 건축물의 수명 연장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장식적 특성이 발달함에 따라 건물의 특수한 성격을 나타내거나 장엄과 위계를 표현하기 위한 목적도 띄게 되었다. 이는 왕권이나 부를 상징하는 궁궐단청과 종교의식을 위한 불교·유교·도교사원의 건축물을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우리의 문화와 문화유산에는 하나하나에 그 뜻과 의미가 담겨져 있다. 단청을 건축물 장식으로 보아 넘길 수도 있지만 그 기원과 의미를 되새기면 보다 풍성한 즐거움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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