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중학교 동창생 10쌍의 부부가 예산 충의사에 모였다. 문화해설을 신청하니 휴일은 예약제라 불가능하다고 한다. 방송국에 오래 근무한 친구가 자청해 예산 사투리를 섞어가며 설명을 한다. 취재를 하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고 자랑도 한다. `윤봉길 의사는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비장한 글을 남긴 채 독립을 위해 망명의 길에 오른다. 윤봉길 의사는 월진회원들이 마련해준 여비를 가지고 상해에서 임시정부의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소원하던 조국 독립의 제단에 몸을 던질 기회를 갖는다. 백범 선생과 윤 의사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과 합동으로 상해 홍구공원에서 거행할 예정이다`라는 <상해 일일신문>의 보도를 접하게 된다. 윤봉길 의사와 백범 선생은 드디어 그 기회를 맞은 것이다. 윤 의사는 백범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다. 윤 의사 본인이 하겠다고 자처한다. 하지만 김구 선생의 마음은 고뇌로 가득 차 있다. 윤 의사는 자식뻘로 조국을 위해 할 일이 창창한데 그리고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선뜻 결정이 안 된다. 그래서 거사에 참여할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한인애국단 회의를 소집한다. 첫날에 윤 의사 외에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전날 야시장에서 거사에 대해 서로가 하겠다던 함경도 사나이조차도 눈을 내리깔고 있다. 이튿날에도 윤 의사 외에는 손드는 이가 없다. 거사 날이 다가와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윤 의사만이 손을 든다. 김구 선생에게 간청을 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세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자식을 가져야 하고, 둘째는 고향을 잘 살게 해야 하고, 셋째는 조국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자식이 셋이나 있고, 농촌 계몽운동과 `농민독본 農民讀本`을 저술해 고향을 잘살게 했으니, 이제는 마지막으로 조국을 위해 일할 차례라고 김구에게 간청한다. 더 이상 시간을 미룰 수 없어서 윤 의사로 정하고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윤봉길 의사만이 의연이 미소를 머금고 있다. 거사일인 4월 29일 아침, 김구 선생과 마지막 조반을 들고서도 시계를 바꾸어 갖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거사 후 자결하기 위해 자결용 폭탄까지 마련한 그 아침의 모습이다. 삼엄한 경계가 겹겹이 처졌다. 하지만 윤봉길 의사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경비도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검문 없이 들어간다. 단상 위에 도열해 있는 원흉들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다`라고 설명을 마치면서 일부는 본인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해서 모두가 웃었지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많은 여운을 남기게 한다.

윤 의사의 동상, 기념관, 묘역 등 전국의 여러 곳에 산재해 있지만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에 국민의 성금으로 지어진 매헌 기념관이 재정적자 때문에 한때는 전기료를 못 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위정자들이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앞에서는 잘 보살핀다고 하면서도 뒤에서는 기관장을 사표 내라고 종용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 올해로 임시정부 100주년,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많은 관심과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기회에 체계적이 관리와 후손들에 대한 예우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지방자치단체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정부차원의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 충의사에 방문할 때마다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관에 강희진 작품 `소설 윤봉길`이 눈에 들어왔다. 구입해 구글지도를 검색해가면서 내가 주인공처럼 몇 번 방문했던 상해의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끝까지 읽었다. 시간과 능력만 주어진다면 소설 윤봉길을 쓰고 싶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 학생 모두가 성금과 철, 구리 등을 모아 윤봉길 의사 동상을 예산중학교 교정에 세웠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윤봉길 의사의 삶은 매헌이라는 호가 암시하듯 한 겨울 추위 속에서 향기를 내뿜는 매화의 고고한 기품과 충의 정신을 간직한 분이다. 독립을 위해 산화한 영원한 청년 윤봉길 의사 덕분에, 임시정부의 불꽃이 된 윤봉길 의사 덕분에 동상 앞에서 고향에서 감사의 마을을 가져본다. 오늘 따라 동상 옆 돌에 새겨진 `처처한 방초가 푸르거든 왕손이랑 손잡고 오게나!` 글귀가 눈에 크게 들어온다.

정해황(대전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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