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시계공에게 최대의 골칫거리는 무엇일까? 바로 중력이다. 이 글은 수천 년 동안 시간의 기준으로 사용했던 불편한 태양시(지구 자전)로부터 독립을 꿈꿨던 시계공들이 중력 때문에 실망하고 극복해온 이야기이다.

실에 매달린 추가 흔들리는 시간은 실의 길이와 중력에 의존한다. 이것이 1600년경 갈릴레오가 발견한 진자의 등시성이다. 하지만 초기 진자시계는 하루에 10분씩 오차가 발생했다. 등시성은 참일까? 이 질문은 1674년 하위겐스에 의해 풀린다. 추는 원과 조금 다른 싸이클로이드라는 곡선 위를 움직일 때만 등시적이었고, 추가 흔들리는 각이 커지면 오차도 함께 커졌다. 추가 조금만 흔들리도록 만들자, 시계의 오차는 하루에 10초로 줄었다. 17세기 시계공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진자시계가 더 빠르게 가는 것이 관측됐다. 1687년 뉴턴은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에서 이 현상을 언급하며 지구는 자전으로 찌그러진 공 모양이고 중력도 찌그러져 있다는 가설을 세운다. 1734년 파리과학한림원은 북극과 적도로 원정대를 보내 실측을 통해 지구는 구가 아닌 타원체라는 결론을 내린다. 시계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지역마다 다르게 갈 것이고, 절대기준이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시계공의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대신 태양시는 훌륭한 보조(타임키퍼)를 얻었다. 1859년에는 영국 국회의사당에 추의 질량이 300㎏인 거대한 진자시계 `빅 벤`이 세워졌다. 이 시계는 2017년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156년 동안 열 번 정도 멈췄는데 그중 절반은 분침에 눈이 쌓인 이유에서다. 진정한 타임키퍼다. 안정적인 타임키퍼는 기차 왕국인 영국에서 기차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데 중요했다. 일출 시각이 경도에 따라 달라서, 해시계 기준으로 기차 시간이 조절되면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타임키퍼는 인류를 산업사회로 이끄는 중요한 도구였다.

1921년 당대 기술을 집약해 만든 자유진자시계의 오차는 1년에 1초보다 적었다. 이 시계가 보여준 지구는 불규칙하게 돌고 있었다. 해와 달의 인력이 주 원인이었지만, 다른 원인을 찾지 못할 때도 많았다. 지구의 자전, 즉 태양시가 불완전한 시간기준임이 드러났지만 대안이 없었으므로 태양시는 그 지위를 유지했다.

시계는 더 정밀해진다. 1929년에는 수정, 코일, 축전기로 연결된 전기회로가 일으키는 전류 진동으로 가는 수정시계가 등장했다. 잘 만들면 오차가 일 년에 1/100초 미만이었다. 이 시계는 중력과 무관하고 배나 비행기의 흔들림에도 동작했다. 단 한 가지 약점은 수정이 노화되면 주파수가 조금씩 변했다. 태양시로부터의 독립은 다시 연기됐다.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야만 했다.

시계공들은 원자를 활용했다. 1920년대 등장한 양자역학 덕분에 시계공은 원자가 전자기파를 흡수할 때 나타나는 양자간섭 현상을 관찰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바로 원자시계다. 1955년 영국에서 선보인 세슘원자시계의 성능은 압도적이었다. 1년에 1/1만 초도 틀리지 않았다. 이 시계는 지구의 자전이 서서히 느려져 2억 년 후엔 하루가 25 시간이 된다는 것도 쉽게 알아냈다. 태양시는 결정타를 입고 1967년 13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세슘원자에게 시간 기준의 지위를 내준다. 마침내 인류는 태양시로부터 독립했다.

20세기 시계공의 환희는 오래가지 않았다. 30년 후 원자시계는 천 배나 정확해졌다. 그 시계로 엿본 세계는 중력으로 휘어있었다. 울퉁불퉁한 지구 중력장에 놓여있는 있는 시계들은 저마다 다른 시공간에서 째깍거린다. 2011년 대지진으로 일본 내 일부 원자시계의 해발고도가 달라졌을 때 세계시각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일반상대론에 따라 이 시계의 흐름을 재조정해야 했다. 지구 중력의 역습이 시작됐다. 21세기 시계공은 지금 중력과 전쟁 중이다. 원래 독립하면 고생 아닌가.

박창용 한국표준연구원 시간표준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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