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총선을 1년 여 앞두고 다시 정계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몇 달 전부터 잠재적, 가시적 후보군이 거론되고 있고 후보들 간의 치열한 물밑 경쟁은 이미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렇게 정치적 경쟁이 가열될 때마다 오랫동안 정치학을 공부하고 정치적 현상을 관찰해 온 사람으로서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권력에 대한 이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권력을 향한 정치가의 열정은 정치학에서 크게 두 가지 접근으로 설명되어 왔다. 하나는 공동체의 공공선 실현을 향한 `윤리적` 열정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자원 확대를 추구하는 `이익`의 열정이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라는 콘셉트 하에 이상적인 국가를 설계하면서 자신의 사적 이익을 철저하게 포기하고 오로지 공동체에 헌신하는 엘리트 집단을 구상하였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할 빌미를 갖지 않기 위해서 이들 엘리트에게는 결혼도 금지되었고 사적 소유도 허용되지 않았다. 고매한 윤리적 사상으로 무장한 엘리트집단은 세속적이고 사적인 욕망과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들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공익에 헌신하는 `윤리적` 정치가 상은 현대 정치문화 속에서 그 설득력을 많이 잃어버렸다. 인간을 호모에코노미스(경제적 동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 하에서 정치가의 윤리에 대한 기대는 자주 비현실적인 것으로 폄하되곤 한다.

`기업가 정신`으로 자본주의 작동메커니즘을 설명한 슘페터는 정치를 시장논리로 설명하였다. 정치는 윤리적 기준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유사하게 이익을 향한 경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슘페터적 관점에서 볼 때 정치가는 공동체의 이익에 헌신하는 `윤리적` 열정보다는 자신의 영향력과 권력을 추구하는 `이익`의 열정으로 움직인다. `정치가의 목표는 다수 득표를 통한 당선`이라는 명확하고 단순한 시장논리는 뭔가 굉장히 설득력 있다.

실제로 온갖 종류의 정치적 손익계산과 이익추구 행위를 보노라면 윤리적 정치를 찾는 것은 연목구어인 것 같기도 하다. 또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가에게 과도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과연 이익을 둘러싼 정치적 시장 경쟁에서 공공선을 향한 윤리적 열정이 설 자리는 없는 것인가? 우리는 정치가에게 윤리적 덕목을 기대해서는 안되는가?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추구하는 호모에코노미스로서의 정치가`, 그리고 `공공선이 실현되는 정치`는 상호 공존할 수 있는가?

정치가에게 조금 더 높은 윤리적 잣대가 적용되는 것은 정치의 공공성 때문이다. 일반인이라면 당연시 되었을 부동산투자와 주식투자가 특별히 문제시되는 것은 정치가의 윤리에 대한 전통적 기대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결혼과 사적 소유를 금지하였던 플라톤의 가혹한 요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는 여전히 정치가에게 공익을 향한 헌신과 사욕의 절제를 기대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익과 윤리라는 두 가지 상반된 논리가 어디서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일 것이다.

정치가의 이익과 윤리라는 두 가지 영역을 연결해 주는 마법의 고리는 선거가 아닐까 싶다. 철저히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이 공적 이익의 실현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가들은 공적 이익의 실현을 통해서만 사적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오묘한 원리를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이 오묘한 마법의 연결고리는 시민이 실제로 공적 이익의 실현에 관심 있는 정치가를 선택할 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한국 시민은 지난 30여년의 민주주의 수업을 통하여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갖고 있고 정책에 대한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지연·학연으로, 또는 정치적 거래의 관점으로 투표하는 사람보다 공적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수준 높은 시민의 비율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현명한 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공공선의 실현에 대한 `윤리적` 열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총선까지 남은 시간 동안 정치가들이 지역현안에 대한 학습과 정책개발에 몰두하기 바란다면 철없는 소리일까?

유진숙(배재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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