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앨리스미스 지음 / 김재성 옮김/ 민음사/ 336쪽/ 1만 4000원

가을
가을
`그는 여든 다섯 살이야.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여든 다섯살 짜리 남자가 어떻게 네 친구니? 왜 정상적인 열세 살짜리들처럼 정상적인 친구를 사귀면 안되는거니? 그건 엄마가 정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달려있어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30대인 엘리자베스는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친다. 엘리자베스는 101살이 된 대니얼과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친구다.

대니얼은 세상이 지금과 달리 흥미진진하던 시절, 당대의 예술가들과 어울리던 지식인이자 작곡가였다. 이젠 동네에서 늙은 동성애자라는 소문에 휩싸여 요양원에서 산다.

대니얼이 청춘을 보냈던 20세기 중반의 영국은 예술가들에게 관대한 사회였다. 문화적 축복을 받았던 대니얼의 인생은 브랙시트로 혼란스러운 2010년대 중반, 달라진다. 이제 대니얼은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이 책의 배경은 2016년 브랙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전후의 시점이다.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갈리면서 영국 사회는 뒤숭숭해졌고 사회적 갈등도 극에 치달았다.

브랙시트 이후의 영국 사회는 엘리자베스의 눈으로 전달된다.

엘리자베스가 스쳐 지나가는 동네 풍경들, 관공서에서 대기하는 주민들의 모습들이 배경처럼 등장인물들을 휘감으며 현재 영국이 어떤 분위기인지 생생히 전달한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여권을 새로 신청하기 위해 우체국에서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리거나 우체국 직원과 대화하며 `머리 크기가 규격에 맞지 않기 때문에` 여권 신청을 거절당하는 장면은 영국 사회가 가진 관료주의적 성격을 정확히 꼬집는 명장면이다.

책을 보다보면 이 소설과 같은 배경인 2016년 개봉한 영국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여러 부분 겹쳐진다. 영국 관료주의가 시민의 삶의 수준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역력히 보여주는 장면은 대니얼이 요양원에서 잠자며 꿈만 꾸는 이유와 맞닿아있다. 대니얼은 꿈 속에 복기되는 옛 시절 추억과 엘리자베스가 `그 투표` 이후 겪는 매몰찬 도시의 분위기와 차가운 사람들은 대조를 이루며 생각의 영역을 넓힌다.

늙은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는, 한 민족이 다른 미족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로 확대된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움은 사회적 변화에 대한 수용자와 방관자로 나뉘며 다양한 인물상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여러 사회 정치적 이슈들로 혼란스러운 영국 사회의 면면을 그만이 가진 날카로운 직감력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스미스는 현재까지 `가을`과 `겨울`을 발표했고 이번 달에 `봄`이 출간된다. 민음사는 4부작을 모두 계약해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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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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