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가입되셨습니다."

전화상담원이 고객에게 설명을 마치고 보험에 가입되었다고 하는 TV광고의 한 장면이다. TV광고에서의 전화상담원은 빠르게 보험상품을 설명한다. 그리고 고객에게 빠르게 과거 병력 등을 묻고는 가입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보험에 가입할 경우 보험사는 고객에게 병력 등을 묻게 되는데 이때 고객은 고지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자칫 병력 등을 부실하게 고지하거나 거짓된 고지를 하는 경우에는 이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전화가입의 경우에는 보험가입 `권유절차`와 `청약절차`로 진행된다. 권유절차에서 전화상담원은 권유하는 보험상품의 장점을 부각시켜 이야기 하고, 이에 현혹된 고객이 보험가입의사를 비출 때야 비로서 불이익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한다. 또 청약절차에서는 치료내역, 병력, 질환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단답형으로 또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고객이 진지하게 귀기울여 대답하더라도 질문을 놓치기 일쑤다. 또 많은 질문들을 답하다가 지쳐 나중에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거나, 심지어는 질문에 순간적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잘못 대답한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면서도 전화상 되묻기가 쉽지 않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했거나, 놓친 질문들에 얼떨결에 `예`라고 답하여 과거 병력 등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면 보험계약은 유효할까.

A씨는 2014년 1월 전화로 상해후유장해와 질병후유장해, 상해사망 등을 담보해주는 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전화 가입 과정에서 A씨는 "최근 5년 내에 입원, 수술, 제왕절개 또는 계속해 7일 이상 치료 또는 계속해 30일 이상 투약 받은 적 있으세요? 최근 5년 안에 암이나 백혈병, 협심증, 심근경색 등으로 질병확정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 입원, 수술, 투약받은 적 있으세요?"라는 질문들에 대하여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A씨는 보험가입 3년 전인 2011년경 암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었다.

A씨는 보험가입 9개월 후 암이 재발해 수술을 받았고, 이로 인한 후유장해가 발생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과거 암 수술을 받은 전력에 대해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였고 또 A씨를 상대로 보험금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보험모집인의 말이 빠르고 발음이 부정확해서 병력을 고지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법원은, A씨가 내용을 다시 확인하지 않고 대답한 것으로 볼 때 보험모집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으로 보이므로 병력을 고지할 수 있는 기회는 제공됐다고 보았다. A씨의 고지의무 위반을 인정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보험계약의 속성상 전화를 통한 보험가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보험모집인과 보험계약자가 얼굴을 맞대고 질문표와 보험청약서를 작성해도 보험사는 고지의무위반이라고 하기 일쑤인데, 전화보험가입과 같이 빠른 보험설명과 병력 등을 묻는 과정에서는 더 많은 문제가 있으리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수긍이 가는 비판이다. 또 이 사건에서의 질문들과 같이 5년 이내에 입원 사실, 7일 이상의 치료를 받은 사실, 30일 이내의 투약 사실 등은 곰곰이 생각해 보거나 또는 서류를 확인해야 할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더욱이 전화 너머로 갑작스럽게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판결은 현실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이와 같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입시 보험모집인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고 답해야 하며, 설명이 빠르다면 천천히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의문이 들거나 이해가 어려우면 적극적으로 상품설명자료를 요청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병력 등을 잘못 알렸다는 생각이 들면 보험사에 다시 확인하고, 그에 따라 보험가입을 철회하는 방법도 있다.

전화를 통한 보험가입은 손쉽고 저렴하다. 그러나 위 사례처럼 고지의무에 위반될 수 있는 위험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김한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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