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훈 한국기계연구원 환경시스템연구본부장
송영훈 한국기계연구원 환경시스템연구본부장
지난해 여름은 너무나도 더워서 필자도 난생처음 밤새 에어컨을 켜야 잠들 수 있는 날이 많았다. 하도 덥다 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윌리스 캐리어요"라고 답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처럼 여름나기의 필수가 된 에어컨은 사실 과학자, 기술자 그리고 사업가들이 수천 년에 걸친 기술을 상용화로 꽃피운 좋은 사례다.

수 천 년 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물이 증발하면 주변의 공기가 시원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이용해 실내 온도와 습도를 쾌적하게 했다. 2세기경 중국 한나라 기술자는 수동으로 팬을 돌려 일으킨 바람으로 물을 빨리 증발시키는 장치를 고안해 황제가 여름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했다. 18세기 중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물보다 더 빠르게 증발하는 알코올을 이용해 여름에도 얼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하기도 했다. 또 전자기장의 법칙을 만들어낸 영국의 과학자 패러데이는 19세기 초반 고압으로 압축된 액체 암모니아를 급격하게 팽창시키면 기체 암모니아로 변하면서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변하는 현상을 찾아냈다. 냉매의 압축과 팽창을 통해 주변 공기를 차갑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오늘날 에어컨의 작동원리와 같다.

19세기 중반 미국과 호주의 발명가들은 냉매의 압축과 팽창을 활용한 기계식 얼음 제조기 특허를 등록하고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드디어 20세기가 막 시작됐을 때 오늘날의 캐리어 에어컨 회사를 창립한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는 기계식 압축기를 전기 모터 압축기로 대체해 간편한 구조의 냉동기 특허를 등록하고 전 세계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에어컨 개발의 역사를 살펴보면 상용화 과정에서 영국 또는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의 활약이 크게 두드러진다.

왜 하필 영국인가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당시 영국의 특허제도다. 영국은 토지나 화폐 같은 재화처럼 사람의 아이디어를 사유재산으로 인정해주는 제도, 즉 특허제도가 실행된 최초의 나라다. 이로 인해 수많은 영국의 기술자나 사업가는 자발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부를 얻고자 했고 그 결과 증기 기관차나 방적기 등 산업혁명을 이끈 여러 기술이 영국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즉, 과학적 지식을 활용해 실용적인 기술을 만들고, 해당 기술을 다른 기술과 융합시켜 발전시키는 데 있어 특허제도가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산업기술 개발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특허제도는 얼핏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기술개발의 동기가 되는, 인간의 탐욕을 활용한 제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특허제도는 사실 특정인이 찾아낸 기술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 해당 기술을 더욱더 빠르게 발전시키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특허로 등록된 기술은 공개가 원칙이며 수많은 기술자가 그 기술을 참고해 더 뛰어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누구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특허제도를 실시한 영국과 그 제도를 수용한 나라에서 수많은 혁신적 기술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산업혁명의 시대에 영국은 특허제도를 통해 국가가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수많은 기술자와 사업가들이 자발적으로 산업의 혁신에 뛰어들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한때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까지 건설할 수 있었다. 우리도 산업혁신을 위해 과학기술 분야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상용화 실적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 연구성과를 더 많이 성공적으로 사용화하기 위해서는 과거 영국이 특허제도를 통해 산업혁명을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것과 같은 새로운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

송영훈 한국기계연구원 환경시스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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