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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유성기 음반에 담긴 여성명창의 목소리

2019-04-09기사 편집 2019-04-09 08: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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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가 성행해 근대시기로 진입하기까지 '명창'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레 남성에게 국한 돼있었다. 그에 비해 여성명창은 '여류명창', '여성명창' 등 여성임을 강조해오는 단어로 표현돼왔다. 또한 근대 5명창(이동백, 김창환, 김창룡, 송만갑, 정정렬)의 범주에도 여성은 포함돼있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물리적,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여성명창이 남성명창에 비해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1930년대 음반회사의 판소리 음반에는 수많은 여성명창들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30년대는 음반의 역사에서 황금기라 불리던 시기였다. 일제의 탄압이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이전과 발매되던 음반의 양상이 바뀌었지만, 녹음기술의 발달과 음반회사만의 기획력을 통해 음반사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녹음기술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음반의 발매수가 늘어났고, 이는 전국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노래를 향유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1930년대를 기점으로 전통음악음반이 차지하는 비율은 확연히 달라진다. 대부분의 음반회사를 일본이 장악하며 새로운 대중가요를 취입했고, 전통음악은 겨우 명맥만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적은 양의 전통음악음반에서 대부분은 판소리 음반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판소리 전집류 음반이 대다수였다. 또한 전집류의 녹음에 참여한 명창들의 성비에서도 여성명창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시대가 변하면서 대중들은 여성명창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선호했기에 남성명창 못지않은 음악활동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중들은 잡가와 민요, 그리고 가야금 병창과 같은 짧고 강렬한 가요형식의 노래를 즐겼으며 일제는 이러한 특성을 파악해 1928년 이전에 주로 녹음되던 전통음악을 제치고 신민요, 트로트 등을 취입해 발매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도 1928년 이후 전통음악음반의 발매 수는 그 이전과 현격히 차이나기 때문에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를 수치로 알아보자면, 1928년 이전 약 97% 정도의 음반이 모두 전통음악음반이었던 것에 비해 1928년 이후 발매된 음반의 약 57% 정도가 대중가요, 신민요와 같은 음반이었으며 나머지 음반의 약 43% 정도만 전통음악 음반이었다. 그렇지만 1928년 이후 음반 발매 수가 그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는 사실에 착안해 볼 때, 전통음악 음반이 차지하는 43% 정도의 수치도 상당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 중 판소리와 잡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상업성을 가장 큰 가치로 두고 있는 유성기음반 회사에서 판소리와 잡가의 음반을 계속 발매해 나갔다는 것은 전통음악 중 판소리와 잡가의 상업적인 가치를 찾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잡가보다 많은 음반 발매 수를 가지고 있는 판소리 음반의 특성으로는 당시 인기 있던 대목들을 따로 녹음했다는 점, 판소리 전집음반을 녹음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유성기음반이 보급되던 초창기에 판소리 음반은 주로 남성 명창들이 녹음을 진행했다면 판소리 전집음반의 녹음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남성들이 맡던 소리대목도 여성 명창들이 맡아 녹음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특정 음반회사에서는 여성 명창들로만 구성된 전집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유성기 음반에 취입된 여성명창들의 소리를 찾아보며, 앞으로도 판소리사에 소중한 사료로써 더욱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이용탁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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