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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서산개척단

2019-04-01기사 편집 2019-04-01 08: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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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일이다.

제19회 전국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이조훈 감독의 영화 '서산개척단'이 서산시의 한 극장에서 전국 첫 시사회를 가졌다.

2013-2018년 1월까지 5년의 제작기간이 걸린 이 영화는 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의 태동과 그들의 삶이 담긴 정부 영상자료, 단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국가폭력과 인권유린 등을 고발하고 있다.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 불린 일명 '서산개척단'은 5·16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갱생의 기회를 준다'며 우범자, 출감자, 윤락녀 등을 사회로부터 강제로 치우는 사회명랑화 사업을 시작했다.

이중에는 정부의 방침과는 다르게 무고하게 잡혀온 이들도 상당수였다.

당시 학교 가다가 잡혀오거나 길거리에서 눈에 띈다고, 통행금지에 걸렸다는 등 일명 '후리가리(경찰이 실적을 위해 강제로 사람을 잡아들인다는 속어)'로 잡혀온 이들도 많았다.

심지어 10살 안팎의 어린이들도 후리가리 대상이었다.

1961년부터 이렇게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로 잡혀온 이들이 1700여명이 넘는다.

초기엔 거처가 없어 야산에 땅굴을 파거나 천막을 치고 1년 정도 살았고, 이후 강제 수용소인 '형설촌'이 생겼다.

정부는 이들에게 바닷물이 드나드는 폐염전을 농지로 개간하는 일을 시켰다.

비탈진 야산을 삽과 곡괭이로 파헤치고, 지게가 없어 등으로 돌과 바위를 날라 갯벌을 손수레와 삽으로 평탄하게 만들어 농지를 한 뼘 한 뼘씩 일궈나갔다.

1961년부터 공식 해체된 1966년까지 5년 간 이들은 농지와 웅덩이, 도로, 수로 등 321㏊를 개간했다

그러나 생지옥에 놓인 이들은 감시원의 눈을 피해 도망가다 걸려 맞아죽기도 하고,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비해 먹는 것이 빈약해 병에 걸려죽거나 영양실조로 죽는 등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수백 명이 이곳에서 죽어나갔다.

특히 정부는 강제로 잡아온 여성들을 단원들과 서산과 서울에서 두 차례 강제 결혼까지, 얼굴 한 번 못보고 화촉을 밝힌 350쌍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올라 관심이 된 이 사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진상규명 등을 위한 기초 실태 파악에 나선다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정부에 의해 60년 가까이 '부랑아'로 낙인찍혀 한 푼 받지도 못하고, 강제노역과 인권유린 등으로 청춘을 날린 서산개척단원들의 한.

시간이 많지 않다.

박계교 지방부 서산주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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