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인가.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친딸임을 주장하는 여성의 친자확인 소송으로 미술계 안팎이 떠들썩했다. 소송을 제기한 여성은 필라 아벨 마르티네스(당시 61세)로 수년간 자신이 달리의 친딸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 사건에 이목이 집중됐던 것은 당시 피게레스 달리미술관에 안치된 달리의 시신에서 유전자(DNA)를 채취할 필요가 있다는 현지 법원의 결정 때문이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아방가르드였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관 뚜껑이 친자확인 소송을 위해 28년 만에 열렸던 것이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마르티네스가 초현실주의 천재의 딸로 인정받으면 자신의 성(姓)에 대한 권리와 재산에 대한 권리 및 저작권 사용료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전했다. 마르티네스에게 달리와 같은 이름(성씨)을 갖는다는 것은 달리가 누리고 남긴 부와 명예의 소유를 의미한다.

살바도르 달리는 비합리적이고 이상한 환각을 사실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그려낸 화가로 유명하다. 달리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기 3년 전에 죽은 형의 이름인 `살바도르`를 동생인 그에게 그대로 붙여줬다. 게다가 그의 부모는 거실에 걸려있는 가족사진 속 자신들과 함께 있는 달리의 죽은 형을 보며 `살바도르`라고 부르곤 했다. 유년시절 달리가 얼마나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과 더불어 비합리적인 환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달리는 같은 이름의 죽은 형에 대한 부모의 깊은 애정 탓에 `살바도르`라는 `이름`으로 죽음(형)과 삶(자신)을 동시에 끌어안고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 탓에 달리는 유년시절 자신이 삶을 인식하기도 전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혼란을 겪었음을 회고한 바 있다. 달리에게 다가온 삶과 죽음의 이중적 의미는 그의 예술세계 안에서 무의식과 현실,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 간격을 좁혀 나갔다.

달리와는 반대로 `이름`으로 자신의 예술세계의 지향점을 스스로 표면화 했던 예술가 박이소(1957-2004)가 있다. 심장마비로 돌연 예술계를 떠나기 전까지 박이소는 자신의 이름을 세 차례 고치고 활동했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은 박철호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유학 한 후 10여 년 동안 박 아무개라는 뜻의 작가명 박모(某)로 살았다. 이후 1994년 귀국해선 `낯설고 소박하다`는 뜻의 박이소(異素)로 살았다.

박이소의 여러 `이름`은 작가 자신과 깊이 결부된 그의 예술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그의 여러 개의 이름은 낯설고 불안한 현실이 엄존하지만 치열하게 지켜내야 하는 자신(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짙은 고민이었다. 예컨대 박모로 활동했던 뉴욕 시절 초기, 그는 백인중심 사회 속 유색인으로서의 소외와 차이를 체감하며 박철호를 버리고 박 아무개로써 살기를 택했다.

아파트 창문 밖에 하루 만에 환하게 매화 꽃송이가 피었다. 꽃을 보며 새삼 `이름`의 의미를 떠올린다. 봄이어서 일까. 근래 각종 행사와 이벤트로 일상이 바빠졌다. 이 행사와 이벤트들이 우리 일상의 `의미`로 다가서는 방식은 미사구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에 있지 않다.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