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는 비합리적이고 이상한 환각을 사실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그려낸 화가로 유명하다. 달리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기 3년 전에 죽은 형의 이름인 `살바도르`를 동생인 그에게 그대로 붙여줬다. 게다가 그의 부모는 거실에 걸려있는 가족사진 속 자신들과 함께 있는 달리의 죽은 형을 보며 `살바도르`라고 부르곤 했다. 유년시절 달리가 얼마나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과 더불어 비합리적인 환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달리는 같은 이름의 죽은 형에 대한 부모의 깊은 애정 탓에 `살바도르`라는 `이름`으로 죽음(형)과 삶(자신)을 동시에 끌어안고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 탓에 달리는 유년시절 자신이 삶을 인식하기도 전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혼란을 겪었음을 회고한 바 있다. 달리에게 다가온 삶과 죽음의 이중적 의미는 그의 예술세계 안에서 무의식과 현실,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 간격을 좁혀 나갔다.
달리와는 반대로 `이름`으로 자신의 예술세계의 지향점을 스스로 표면화 했던 예술가 박이소(1957-2004)가 있다. 심장마비로 돌연 예술계를 떠나기 전까지 박이소는 자신의 이름을 세 차례 고치고 활동했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은 박철호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유학 한 후 10여 년 동안 박 아무개라는 뜻의 작가명 박모(某)로 살았다. 이후 1994년 귀국해선 `낯설고 소박하다`는 뜻의 박이소(異素)로 살았다.
박이소의 여러 `이름`은 작가 자신과 깊이 결부된 그의 예술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그의 여러 개의 이름은 낯설고 불안한 현실이 엄존하지만 치열하게 지켜내야 하는 자신(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짙은 고민이었다. 예컨대 박모로 활동했던 뉴욕 시절 초기, 그는 백인중심 사회 속 유색인으로서의 소외와 차이를 체감하며 박철호를 버리고 박 아무개로써 살기를 택했다.
아파트 창문 밖에 하루 만에 환하게 매화 꽃송이가 피었다. 꽃을 보며 새삼 `이름`의 의미를 떠올린다. 봄이어서 일까. 근래 각종 행사와 이벤트로 일상이 바빠졌다. 이 행사와 이벤트들이 우리 일상의 `의미`로 다가서는 방식은 미사구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에 있지 않다.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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