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엄마가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동시에 같은 유치원에 보내며 경험한 일을 들려주었다. 하루는 유치원 선생님이 작은 아이에 대해 "애가 어른 같아요"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그게 너무도 속상하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큰애가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 작은애가 깜짝 놀라서 언니에게 달려간대요. 유치원에서 간식을 먹을 때에도, 신발 신고 벗을 때에도 어디선가 동생이 나타나 언니를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동생인데도 언니를 따라다니며 챙겨주는 아이들, 이들이 바로 발달장애인의 형제자매들이다.

장애아동의 형제자매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만난 많은 학생은 가정에서 장애 형제자매를 보살피는 역할을 맡고 있었고, 힘에 겨워했다. "동생이랑 슈퍼에 갔는데 기분이 많이 안 좋았는지 짜증내면서 울더니 그 자리에 누운 적도 있어요. 그때 사람들이 모두 놀라 쳐다보는데 당황스러웠죠." (남·중학생)

또 장애아동의 형제자매들은 부모의 사랑을 빼앗겼다는 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 엄마는 장애가 있는 자녀의 치료와 교육에 매달리느라 장애가 없는 자녀까지 돌아볼 여력이 없고, 아이는 그런 부모에게 서운해 한다. "저는 제가 어디서 주워온 애인 줄 알았어요. 하도 엄마가 오빠만 챙겨서요."(여·고교생) 그렇지만 이들은 부모가 장애 형제로 힘든 것을 잘 알기에 투정을 부리지도 못한다. `나까지 엄마를 힘들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내가 뭐든지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도 잘해야 하고, 말썽부리지 말아야 하고. 그래야 제가 조금이라도 엄마를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여·대학생) 이런 아이들에게 주변에서는 "장애 형제가 있는데도 잘 자랐구나! 정말 착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칭찬을 들을 때조차도 이들의 속마음은 복잡하다. 실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장애 형제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공식적으로 `착한 아이`인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많은 장애아동의 형제자매들의 특별한 고민은 더 있다. 부모가 연로했을 때나 부모 사후에 장애 형제를 돌보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중에 제가 함께 살며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하죠. 부모님은 너는 그냥 너만 잘 살아라 하시지만요."(여·중학생)

장애가 있는 형제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도 속으로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가슴앓이를 한다. 장애아동 형제자매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은 조심스레 이렇게 털어놓았다. "따로 살면서, 보통 다른 집들이 그러는 것처럼 명절 등 일 년에 몇 번만 만나면서 지내고 싶다"고.

장애인의 형제자매들은 외롭다. 가족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장애 형제와 관련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힘들다는 점에서다. 그런데 비장애 형제들 만의 모임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 `아!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었구나.` ` 내가 동생을 미워하기도 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괜찮구나!`라며 안도하게 된다. 불필요한 죄책감을 덜게 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장애가 있는 형제를 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손 안 가는 착한 아이로 보이는 장애아동 형제자매들에게도 심리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비장애 형제에게 더는 "넌 뭐든 잘해야 한다" "너까지 그러면 어떻게 하니?"란 말을 멈추고, 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궁극적으로는 발달장애인의 삶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가족들의 삶을 전적으로 희생시켜야만 발달장애인의 삶이 가능해지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발달장애인의 부모뿐 아니라 비장애 형제들의 삶도 `안녕`할 수가 없다. 발달장애인이 누리는 사람다운 삶에 이웃이, 사회가, 국가가 함께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한다. 형제들 간에 각자 잘살고 있다가 가끔 반갑게 만나는 것을 꿈꾸는 발달장애인 비장애 형제의 소박한 소망이 허용되고 이루어지길 바란다.

전혜인 건양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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