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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 말하라] 독서로 생기는 관점에 대하여

2019-03-21기사 편집 2019-03-21 08: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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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읽을 것인가.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독서법을 다루는 책이 여러 권이다. 다독, 정독, 남독 등 책을 읽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책과 사람마다 다르다. 독서를 하다보면 관점이 생긴다. 관점을 가지고 읽는 관독(觀讀) 독서 경험을 나누려 한다.

'자연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는 관점과 '인간은 자연 일부다'는 관점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창세기에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회상>을 읽으면, 소크라테스가 '자연은 인간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17세기에 프랜시스 베이컨에 의해 널리 퍼졌다. 베이컨은 <신기관>에서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에게만 있고, 이성과 종교를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믿고 실천했다.

17세기 과학혁명은 산업화를 가능케 했다. 창세기, 소크라테스, 프랜시스 베이컨으로 이어지는 자연관은 환경파괴와 오염의 바탕에 깔려있다. 정복을 지향하는 자연관은 산업화, 자본주의와 함께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킨 출발점이다.

20세기에 '자연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에 반론을 제기하는 흐름이 생겼다. 1962년에 레이첼 카슨이 살충제의 위협을 다룬 <침묵의 봄>이란 책을 내놓았다. 20세기는 산업화가 진전되고, 화학공업의 발달로 화학약품을 살충제로 사용하게 되었다. 살충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돼 해충의 저항력은 강해지고, 익충들이 더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살충제로 인한 지표수, 지하수, 강, 토양의 오염이 인간에게 주는 피해를 열거하며, 인간이 정복자로서 살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침묵의 봄>은 환경학계에 고전이다. 같은 관점에서 미국 부통령이었던 환경운동가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은 죽음, 세금, '인류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란 사실은 우리가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는 유행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질 문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해진 사이에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근대인은 자신을 자연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지배하고 정복할 운명을 타고난 외부 세력'이라고 여긴다고 지적한다.

환경오염을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철학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다. 이처럼 독서를 통해 관점을 가질 수 있고, 반성과 해결을 시도할 논거를 찾을 수 있다.

금강에 설치한 보를 어찌할 것인가. '수질을 보호해야 한다.' 와 '농업용수의 부족을 우려'하는 견해로 나뉘어 보의 해체 둘러싸고 논쟁이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해 예상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토론이 논쟁이 되어 말싸움하게 되면 자기 뜻만 강조하고 상대의 뜻을 무시하기 쉽다. 논쟁이 자존심이나 정치적인 입장에 서다 보면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많아진다. 어느 쪽이나 잃는 것이 적어야 한다. 생각은 말과 글이 되고, 말은 토론과 논쟁의 수단이다. 토론과 논쟁에서는 효과적으로 논증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달라도 소통할 수 있다. 남의 생각을 바꿀 수 있고, 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보를 둘러싼 논쟁에서 잃는 것을 줄이려면 다음 원칙을 지키리라 믿는다. 첫째, 취향과 주장을 구별하고, 둘째, 주장은 반드시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셋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는 "관점의 차이는 IQ 80의 차이에 준한다."고 말한다. 독서로 생기는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현명하게 바라보자.



(독서로 말하라) 著者. 북 칼럼니스트 노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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