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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식민주의를 부순 신동엽 시인

2019-03-21기사 편집 2019-03-21 08: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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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의 시인 신동엽이 작고한 지 50년이 되었다. 올해가 그의 50주기이다. 소년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그의 생애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와 얼룩이 깊이 새겨져 있다.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황국소년 복장의 사진은 그 상처의 역사적 표현이다. 그가 태어나 살고 시를 썼으며 운명을 달리한 부여는 그에게 죽음과도 같은 상처의 운명을 주었지만 동시에 기념비적인 문학작품을 주었다. 그 작품들을 기념하여 올해 여러 행사가 준비된다고 한다.

소년시절의 황국신민이었던 그는 해방 이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을 역사의 질곡을 넘어서 가장 낭만적인 현실주의자로 성장했다. 청춘기에 맞은 한국전쟁은 그의 몸에 치유될 수 없는 흉터를 남겼는데, 국민방위군에 소집되었다가 이승만정부 권력자들의 횡령에 거의 굶어 죽을 것 같은 몸이 되어 소집 해제된 후 지병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단지 젊은 시절의 몸이 경험한 상처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가장 뜨거운 정신의 상처이기도 했다. 올바른 국가와 정부에 대한 그의 필생의 염원이 그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민족적 저항과 새 역사에 대한 갈망에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생체험 자체가 그 갈망을 품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목숨이었던 데서 연유한다.

생체험을 목숨이라고 쓰고 나니, 우리의 일상 모두가 생체험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게 된다. 특별히 기억되어 오래 우리를 들뜨게 하는 거의 모든 사건들은 바로 그렇게 목숨화 된 체험들이다. 일상은 그렇게 소중하고, 역사는 그렇게 우리 옆에 목숨처럼 존재한다. 전쟁과 독재, 외세는 그것을 일상적으로 체험한 사람들의 몸에 살아남아서 때로는 분노하게 만들고 때로는 주눅 들게 만든다. 무서운 것은 그것이다. 제아무리 사소한 삶을 견디며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모든 시간에는 일상으로 녹아든 역사의 숨결이 있다. 그 역사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고, 부자유하게 한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자유인지 부자유인지는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이 잘 안다.

이 일상이 어떻게 역사와 관련되어 있는지를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매우 자주 경험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중학생이었던 딸과 함께 전시품을 보고 있었다. 뒤에 쳐졌다가 급기야는 시야에서 사라졌던 딸이 뾰로퉁한 얼굴로 급히 다가오더니 빨리 나가자는 것이다. 만류해도 말을 내 말을 들을 생각은 전혀 없는 눈치다. 미술관에서 나온 나는 아이에게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아이는 당연히 울고… 울면서 하는 말이, 갑자기 배가 아파 전시장과 전시장 사이의 계단에 잠시 앉아 있는데, 자원봉사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다른 곳으로 가라며 혼내더란다. 미술관 안에서는 엄숙하고 조용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배운 그 할아버지(세대)에게는 계단에 잠시 앉아 있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곧바로 딸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까지 포함해서 지금 나이 든 세대에게 교육은 이유를 알아보고 기다려주는 시간도 없이 혼내는 것이고, 필요하면 내쫓는 것이었다. 그것을 배제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먼 곳으로 갈 것도 없이 바로 이 땅의 식민지시대에 민중들에게 벌어졌던 일이다. 식민지의 권력을 이어받은 사람들에게 전형적으로 보이는 태도도 그것이다. 모든 위압적인 기관은 그런 의미에서 식민주의의 장치이다.

이것이 일상화되는 역사가 신동엽이 살아 견뎠던 역사다. 억압과 배제와 추방의 역사. 그는 부여에서도 오래도록 배제되어온 삶을 살았다. 그의 시비 옆에는 그의 시의 의미를 훼손하는 기념물이 오래 세워져 있었으며, 그의 생가 옆에는 '빨갱이 타도하자'라는 뜻의 구호가 붙은 시멘트 건물이 위압적으로 들어서 있었다.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출중한 순정한 정신의 한 시인을 그렇게 모욕하고도 태연할 수 있었던 시대를 우리는 건너 왔다. 필연적으로 그 기념비는 오래전에, 건물은 지금 막 철거되었는데, 그 모욕을 견딘 시인을 기리는 일은 그를 지금보다 더 자주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 가서, 그 위압적이었던 건물 자리가 아직도 은밀하여 처참한 일상의 식민주의를 넘어 얼마나 많은 자유로 열려 있는지를 경험하는 일이 올해 내가 자주 해야 할 일이다.

박수연(문학평론가,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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