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백제문화의 보고
#1987년 7월 13일 부여군 일원에 하늘에 구멍이 난 듯 호우가 쏟아졌다. 시간당 100㎜가 넘게 퍼부어 하루 강우량이 연간 절반 수준인 604mm에 달했다. 당시 왕포리 배수장 앞 제방이 불어난 백마강 물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군수리 일대는 처마 밑까지 물에 잠겼다. 사망 또는 실종자가 139명이나 되는 초대형 자연재해였다. 변변한 홍수예방시스템이 없었던 걸 보면 절 반 쯤은 인재(人災)였다.
천혜의 자연과 역사문화를 담고 있으면서도 금강처럼 재해에 시달린 강은 없었다. 한강(전두환 정권)이나 낙동강(TK 정권)이 `예산 폭탄`을 맞을 때도 개발이나 보존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마다 홍수와 가뭄이 되풀이되면서 구석기와 백제유적은 물론 강경의 근대문화유산이 물에 잠기기 일쑤였다. 농사는 하늘에 맡겨야 했다. 금강대홍수 30년을 넘긴 이명박 정부 들어서야 4대 강 사업에 포함돼 7조 원 규모의 `치수(治水)`가 이루어진 게 환경론자들의 주장대로 재앙이었을까.
두 차례 정권이 바뀐 오늘, 금강이 보(洑) 철거를 놓고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가 4대 강 사업으로 건설된 금강과 영산강의 5개 보 중 세종보와 죽산보를 철거하고, 공주보를 부분 철거하기로 하면서 농민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백제보도 수문을 상시 개방하기로 해 유독 금강수계가 정책의 희생양이 된 모양새다. "충청도가 우스우냐"라는 말이 터져나올 만큼 민심이 격앙됐건만 정부는 강행할 태세다. 안 그래도 4차례나 감사원 감사를 받은 사업이다. "기록적인 호우가 내리지 않아 4대 강 살리기의 효용을 보여주지 못한 게 MB(이명박)의 불행"이라는 자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성과나 문제를 온전히 검증하지 않은 상황에서 멀쩡한 보를 뜯어내는 건 행정의 횡포다. 환경 평가의 신뢰성이나 주민 동의 여부도 그렇거니와 충청인의 생존권이 걸린 사안이라는 점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할 일이다. 2015년, 100년 만이라는 충남지역의 최대 가뭄을 어떻게 해결했는 지 잊은 듯 하다. 당시 공주보-예당저수지, 백제보-보령댐 도수로를 통해 금강 물을 끌어다 서북부 지역을 해갈했다. 공주보를 없애 농업용수가 고갈되면 기우제라도 지낼 텐가.
4대 강을 적폐로 규정하고, 철거를 밀어붙이다 보니 촌극도 빚어지고 있다. 4대 강 다른 보와 달리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계획에 따라 도심 한복판에 설치된 세종보의 경우다. `물이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친환경 수중보를 건설했건만 하루 아침에 철거 대상으로 전락했으니 웃프다. 환경 보전이 전가의 보도라면 20년 가까이 해수 유통을 막아 수질을 악화시켜온 금강하굿둑부터 트는 게 순서다. 전북의 반대는 두렵고, 충남의 분노는 감당할 만하다는 건가.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의 폐해는 급속한 탈원전(脫原電)의 사례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백 번 양보해 생태 개선 차원에서 철거가 불가피하더라도 시간을 갖고 수질과 경제성 등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검증하는 게 순리다. 현지 주민 동의 같은 여론 수렴 절차를 무시해서는 민심이 더욱 사나워진다. 주민 반발이 격화되자 해체 여부를 6월 출범하는 국가물관리위원회로 넘겼다지만 이 정도 시간으로는 어림없다. 최소한 4계절 이상 철저히 모니터링 한 뒤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 금강을 정권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전리품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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