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파트 천장에서 물방울이 맺혀 똑똑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윗집 테라스에서 누수가 생겨 집까지 스며든 것이다. 다행히 윗집에서 방수공사를 진행해 해결됐지만, 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틈 사이로도 흐르기 때문에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발전소나 병원에서 발생한 방사성폐기물은 땅 속 깊은 곳에 묻어 처리한다.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격리해야 하는 처분장 역시 방수가 매우 중요하다. 방수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문제라,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의 방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처분장은 폐기물을 밀봉해 묻은 후에도 300년 동안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방수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300년의 시간 동안 빗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방법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적절히 경사진 덮개를 사용해 물이 고이지 않고 최대한 흘러가도록 하면서, 증발되기 쉽도록 특별한 기법으로 설계할 수 있다. 또 덮개 아래로 스며드는 적은 양의 물도 차단할 수 있도록 특별한 소재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이렇게 다양한 공학적 기법을 이용해 설계를 완성한다 해도, 이 방법이 300년 동안 제대로 기능을 발휘해 빗물의 유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의 문제다. 실제 시설을 만들어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300년 동안 관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찾아낸 방법 중 하나가 `자연유사(Natural Analogue)` 연구이다.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하거나 규모가 너무 커서 실험으로 입증하기 힘든 경우, 자연에서 유사한 현상을 찾아 관찰하며 우회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주에는 천 오백여년 전에 만들어진 신라시대 고분들이 남아 있다. 이런 고분 중에는 오랜 기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내부의 유물을 놀랍도록 잘 보존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 고분의 구조를 분석하면, 수백 년 동안 안전하게 유지해야 하는 처분장을 설계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다.

이런 자연유사 연구는 수 만년 이상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설계할 때도 매우 유용하다. 아프리카 가봉의 오클로(Oklo) 지역은 약 17억 년 전에 자연적으로 핵반응이 일어난 곳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핵반응에 의해 생성된 방사성물질이 다른 곳으로 확산되지 않고 그 지역 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주목한 전문가들이 오클로 지역의 지질조건과 수화학적 특성 등을 연구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는 캐나다의 시가 레이크(Cigar Lake) 우라늄 광산이다. 이 광산은 인공적으로 설계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과 매우 유사한 자연 구조를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동안 우라늄이 유출되지 않은 시가 레이크 광산의 비밀 역시 연구하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이 30년 이상 자연유사 연구를 수행하며 얻은 결론을 요약하면, 자연은 우리의 예측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고 안전하다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과 유사한 형태와 특성을 가진 곳들을 조사한 결과,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방사성물질의 유출과 이동이 적었다. 이는 자연이 유해물질을 안전하게 격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자력 발전이란 결국 땅 속에서 우라늄을 캐내 전기를 만들고, 남은 우라늄과 방사성폐기물을 다시 땅 속 깊은 곳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라늄을 캐내고 전기를 만드는 기술은 무르익었다. 이와 비교하면 쓰고 남은 것을 땅 속으로 돌려보내는 기술과 경험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자연유사 연구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땅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를 바탕으로 처분장의 안전성을 확인해 나간다면, 장기적인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불확실성을 걱정하며 원자력 이용을 꺼리는 이들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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