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남녘의 산에 가 보니 훈풍에 진달래 몽우리가 도톰하게 부풀어 올랐다. 일찍 핀 산수유와 매화는 벌써 시든 꽃잎을 떨구고 있다. 이제 곧 4월이 되고 봄 처녀 봄 총각 같은 새내기들이 글쓰기 강의실에 들어설 것이다.

학교들은 보통 3월에 개강을 하지만, 대전시민대학은 분기별로 1년에 네 번 새 학기를 시작한다. 자기 삶을 글로 쓰려는 새내기들의 기대와 설렘의 농도는 대학 신입생들 못지않다. 어떤 배움이든 배움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학습자를 청춘으로 데려가기 마련,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생의 연인이다. 그래서 생의 모든 열정에는 `진저리쳐지는 포만의 정점`이 있다. 이제 꽃처럼 난만한 수사의 유혹에 이끌릴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첫`이 만나야 하는 책상 위의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계절에 봄이 있고, 하루에 아침이 있으며, 우리 삶에 유아기가 있듯, 글쓰기에도 `첫` 시절이 있다. `첫` 글쓰기는 설렘과 기대 못지않은 부담과 난관을 거느리고 있다. 내 글이 남 보기에 너무 형편없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마음에 그늘을 드리운다. 하지만 내 좌우명은 이것이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도 없고 끝까지 못 쓰는 사람도 없다.

`글쓰기`의 마지막 음절을 운으로 삼아 글쓰기의 조건을 들어보자. 그것은 `용기, 끈기, 깨기`다. 용기와 끈기에 대해서는 남들도 누차 언급한 것이니 여기서는 `깨기`에 대해 말해 보자. 벽돌을 깨고 유리를 깨듯 그동안 내 속에 알게 모르게 고착된 관념을 깨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자. 구체적으로는 언어에 대한 획일적 의미규정, 틀에 박힌 문장과 구도, 자서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습관에 붙잡힌 내 삶을 깰 수 있고, 마침내 창조적인 글쓰기에 도달할 수 있다. 용기, 끈기, 깨기의 순행이 아니라 깨기부터 시작해 용기와 끈기를 불러내는 역순행이 필요하다.

깨기는 딱딱한 땅을 뚫고 나온 새싹처럼 싱싱하고 생동하려는 나이든 봄 처녀, 봄 총각들의 도전이다. 그것은 `깸`의 글쓰기를 통해 나이 든 사람도 처녀 총각처럼 생동할 수 있다는 삶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이다. 이런 깨우침에 이른 사람들이 쓴 글이야말로 카프카의 말처럼 독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기영(수필가, 대전시민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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