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봉덕시장에 놀러 가면 납닥만두 할매가 계셨다. 할매는 시장골목 어귀에 가스버너 통 하나를 앞에 두고 목욕탕 의자에 앉아 매일 납닥만두를 팔았다. 할매는 납닥만두 10개를 통째로 기름 두른 팬에 무심히 놓는다. 그리고 한 동안 지긋이 보다가 지글자글 소리를 낼 무렵 호떡 뒤집듯 한 방에 뒤집는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뒤집힌 납닥만두에는 군데군데 노릇노릇 지져진 크고 작은 동그란 자국이 선명하다. 다진 파와 송송 썬 풋고추가 제 맛을 곁들인 초간장에 살짝 찍어 바삭하고 한 입 물면 납닥만두 속에서 엄청 뜨거운 당면이 부추향과 함께 터져나온다. 쫀득쫀득하고 고소한 납닥만두는 10개를 먹어도 언제나 좀 부족함이 남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즈음, 이 납닥한 반달모양 만두는 도깨비시장에서 떡볶이와 찰떡궁합 음식으로 발전했고, 대학을 다닐 무렵 신촌 길거리 떡볶이 리어카에 `납작만두`라는 이름으로 상경해 국민 간식으로 자리매김 하게 됐다. 입덧을 하던 어느 날 문득 봉덕시장 납닥만두가 생각났다.

"엄마, 봉덕 시장 납닥만두 할매는? 딴데 납작만두는 그 맛이 안나서~", "그 할매 죽은 지가 언젠데...?"

봉덕시장 납닥만두는 그렇게 2세대 납작만두만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납닥만두`가 그렇게 아쉽고 그리운 건 봉덕시장 할매만의 레시피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가 그렇게 바삐 구워 대도 먹성 좋은 남동생이랑 돌아가신 아빠와 함께 깔깔거리며 순식간에 비워내고 젓가락 빨며 기다리던 그 추억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식욕을 조절하는 중추는 뇌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시상하부`인데, 시상하부는 시각, 후각, 청각 정보들이 모여드는 시상 바로 아래에 연결되어 있고,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와 인접해 있다. 뇌과학자들은 음식의 맛과, 소리와 냄새가 옛날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유명 쉐프의 솜씨와도 비교 불가한 어머니의 손맛도 유년시절, 미처 다른 맛을 알기 전 각인되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맛나다는 음식도 지금은 없어져 기억 속에만 남은 음식들과 애시 당초 `싸움`조차 할 수가 없다. 요즘은 맛집을 찾아 전국을 다니고, 음식 투어 해외여행 상품도 인기이다. 소문난 맛집 음식을 먹기 위해 새벽부터 줄서는 것을 마다하지도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일단 음식이 서빙되면 음식 사진을 찍는 거룩한 `통과의례`를 거친 후에야 수저를 든다. 맛나게 찍힌 음식 사진은 SNS에 올려 지인들과 공유하고 수시로 꺼내 추억하기도 한다. 욜로라이프의 유행과 함께 미식 체험 문화는 일종의 문화콘텐츠로 `Eat`과 `Entertainment`가 합해져 `이터테인먼트, Eatertainment`라고 하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Mukbang(먹방)`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 열풍을 일으켰다. 이것이 장기적 경제 침체로 인한 불안감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유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 자기만의 납닥만두, `소울푸드`를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다. 어쩌면 `오늘`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음식이 10년, 20년 뒤 지치고 고단한 어느 날, 따뜻함과 행복함을 소환해 줄 수 있는 `소울 푸드`로 평생 마음에 품고 갈 영혼의 무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김기남 대전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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