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대표적 경전인 `시경`을 우리말로 옮긴 정상홍 동양대 교수는 번역서의 머리말에 한자 바람 풍(風)의 어원을 풀어놨다. "풍(風)은 본래 범(凡)자의 가차자이며 이는 곧 강신(신내림) 또는 초신(신을 부름)의 뜻인데, 전국시대 이후 뜻이 거의 잊혀졌다"고.

가차란 어떤 뜻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때, 그 단어의 발음에 부합하는 다른 문자를 원래 뜻과 관계 없이 빌려쓰는 방법이다. 바람은 고요할 때도 모든 곳에 존재한다. 궁리해보면 어느 곳에나 머무르기에 무릇 범(凡)과도 통하지 않을까. 신도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만 바람처럼 보이지 않고 타물을 통해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경지로 보면 바람 풍과 무릇 범이 닮았다. 같은 책에는 "조상의 신령이나 기타 신령에 강림하기를 청하는 제사를 범제(풍제)로 읽어도 될 듯하다"는 구절도 나온다.

한때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바람을 일컫는 말이 풍부했다.

봄철에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 봄 꽃 필 무렵 부는 꽃샘바람, 음력 사월 스무날께 부는 몹시 추운 손돌이바람, 모낼 무렵 오랫동안 부는 아침 동풍과 저녁 북서풍을 부르는 피죽바람, 이리저리 방향 없이 막 부는 왜바람, 비는 안 오고 몹시 부는 강바람, 저녁 늦게 부는 늦바람, 첫가을 생량 머리에 선들선들 부는 건들바람, 솔솔 부는 솔바람, 산들산들 부는 산들바람, 들에서 불어오는 들바람, 벌에서 부는 벌바람, 뒤에서 불어오는 꽁바람, 남쪽에서 불어오는 마파람, 북동풍을 뱃사람이 부르는 높새바람 등 `우리말 갈래사전`에는 미처 소개 못한 순수 바람말이 그득하다.

가객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노래했다. 지난 며칠 바람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미세먼지를 품은 바람으로 외출이 겁나기도 했지만 정체됐던 미세먼지가 바람에 줄기도 했다. 병 주고 약 주는 바람. 그러나 기실 바람은 죄가 없다. 잘못이라면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지 않은 채 과거도, 지금도 곳곳에 너무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는 호모 쓰레기쿠스인 걸. 봄바람에 미안하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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