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진(1916-2003)은 공주 무릉리에서 태어나 대전중학교(현 대전고)를 다녔다. 어릴적 집안에서 소리를 듣고 자라나고 노래를 곧잘 했던 그는 그는 대전을 찾은 협률사(協律社) 공연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청양의 소리꾼 송병두의 집에서 머슴노릇하며 소리를 배우고는 김천, 대구, 경주 등지의 권번(예인양성소)의 선생노릇을 하다 중앙무대로 올라갔다.

박동진이 태어나고 소리를 배운 공주를 비롯한 충청권은 중고제 판소리가 탄생하고 흥했던 곳. 하지만 그가 소리공부를 시작한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는 활동공간도 좁았고 돈벌이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울과 가난을 떨치고 박동진은 마침내 1960년대 후반 `판소리 완창`이란 대혁신을 이뤄냈다.

공주는 임란 직후인 1603년부터 충청도관찰사가 부임하는 충청감영이 자리잡아 지금의 대전, 세종, 충남북을 아우른 총 54개 고을을 관할했다.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군으로 이전될 때까지 공주는 330여 년간 중부권의 수도 역할을 했다. 궁궐 가는 진상품은 공주의 감영으로 우선 집결되었으며, 관아와 병영, 선비들의 의례와 풍류와 관련된 음악 관련 종사자들이 최소 수백명은 공주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각기 태어나고 공부한 곳은 달랐지만 고수관, 이동백, 김창룡, 김석창, 황해천, 황호통, 박상도, 정정렬 같은 대명창들도 공주에서 활동했다. 충청감영이 있었기에 공주는 중고제의 본산이자 호서와 호남지방의 판소리를 서울로 연결하는 곳으로서 기능했다는 말이다. 역사상 중고제 소리가 가장 많이 불린 곳을 꼽는다면 단연코 공주일 것이다.

그동안 공주에서는 해마다 백제문화제를 통해 백제의 음악과 춤을 전승하기 위해 진력해왔고, 충남연정국악원을 1997년부터 운영하며 충남권 전역에 국악을 보급하고 있다. 박동진 생전인 1998년에 박동진판소리전수관을 설립했고 그즈음 시작한 `박동진 판소리 전국 명창·명고대회`는 올해로 20회째를 맞는다. `봉현리 상여소리` `선학리 지게놀이` `의당 집터다지기` 등 도 지정 무형문화재를 전승하고 있고, 공주아리랑과 두레풍장도 활발히 전하고 있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공주의 공산성, 송산리고분군이 등재된 데 이어 2018년에는 마곡사가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세계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세계인류가 공통으로 보존해야 할 유산을 셋이나 보유한 공주시는 세계인들에게 제대로 된 백제의 음률과 춤, 명품 국악 공연을 선보여야 할 필요성이 크다.

여기에 국립국악원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국립국악원 지방분원이 영남(부산), 호남(진도·남원)에만 설립되어 있다는 사실은 충청권 전통음악을 살리는 데 국립국악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중부권에 분원을 세운다면 최적지는 바로 공주시다. 전통시대에 중부권 문화예술의 중심역할을 해왔고 지금까지도 그몫을 꾸준히 해온 예향이며, 대전시, 세종시와 연접해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공주시장 김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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