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미의 독립영화 읽기] 오사카 시네누보

오사카의 미니씨어터 시네누보는 입구에 들어갈 때부터 꽤나 인상적이다. 건물 앞을 드리우는 커다란 장미꽃이 영화관을 들어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 발을 내딛으며 이상적인 예술영화관의 인테리어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다. 시네누보는 어둠의 공간인 상영관과 햇빛을 머금은 로비의 조합이 이질적이면서도 꽤 따뜻한 느낌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은 지배인 카게야마 사토시 씨가 처음 인도한 곳은 상영관이다. 극단 유신파의 단장 마츠모토 유키치씨의 디자인에 기반한 상영관은 마치 스페인의 가우디 건축물을 떠올리게 했다. 극장에 들어서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일상 안에서 깊이 들어가는 시간과 경험을 만들어 주고자, 천장은 수면을, 천장으로부터 내려오는 장식물은 물방울을 이미지화 했다.

1984년부터 영화신문을 만들면서 자신들이 보고 싶던 영화에 대한 욕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부터 시작했던 카게야마씨는 여타의 일본 미니씨어터들의 탄생이 그렇듯 자주상영부터 시작했다. 자주상영에 필요했던 것은 상영할 영화, 상영의 홍보작업, 그리고 상영할 장소였다. 그러나 당시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 지방에는 예술영화를 상영할만한 곳이 전무했고, 그는 영화를 위한 공간을 위해 영화신문의 독자들에게 출자를 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렇게 400명의 시민출자자들이 모집됐고 4000만엔이 모였다. 그리고 이는 시네누보의 탄생을 알렸다. 카게야마씨는 출자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없다는 불만과 영화관을 직접 만든다는 로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나고야의 나고야 시네마테크, 삿포로의 시네마 키노, 다카사키의 다카사키 시네마테크라는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짐작했다.

지역에서 영화관을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유지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말했던 4000만엔의 출자금도 세 번에 걸쳐 모집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벌써 소진되었으며 지금은 빚이 많다고 했다. 예술영화관의 운영이란 늘 적자에 직면한 일이다. 다만 2000년대 초, 디지털 상영기기의 마련이라는 위기가 찾아왔지만 상가의 번영을 위한 일이라며 지원금을 얻어냈다. 처음엔 자주상영단체로 참여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극장으로 도쿄의 커뮤니티 시네마와 교류도 하게 됐다. 이렇듯 다사다난한 극장의 운영 때문인지 카게야마씨는 4-5년을 버티면 잘한 거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고 버텨왔는데 이제 20년을 버텼으니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닐지 자신을 다독여왔다고 했다. 긴 인터뷰 후, 그는 자신의 작은 극장과 교류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먼 곳에서 온 손님에게 더위를 식힐 소바 한 그릇을 대접했다. 그가 버텨온 20년의 세월을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흐르듯 보내 온 그의 시간들에 더없이 부족할 응원을 보내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장승미 대전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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