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맥쿤] 앤드루 윌슨 지음/성소희 옮김/을유문화사/608쪽/2만5000원

2010년 9월 20일 오전. 런던에 위치한 세인트 폴 대성당의 바깥은 패션쇼 무대가 됐다. 모델 케이트 모스, 모델 나오미 캠벨, 배우 세라 제시카 파커가 각각 검은색 옷차림을 하고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영국에서 가장 극찬받았던 동시에 가장 악명 높았던 패션 디자이너를 추모하려고 1500명이 러드게이트 힐 꼭대기에 있는 대성당에 모인 것.

추모식의 주인공은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는 `리`라고 불렸지만 전 세계에서는 `알렉산더 맥퀸` 이른바 패션계의 악동으로 알려진 디자이너였다.

그는 불우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타고난 미적 감각과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기존의 관례를 거부하는 과감한 스타일링과 설치 미술을 방불케 하는 패션쇼로 찬사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27살의 나이에 명품 브랜드 `지방시` 총괄 디자이너를 맡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시장에 안착시키면서 화려한 성공기를 써 나갔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로 네 차례나 뽑히고 2003년에 대영제국 3등 훈장을 받은 사실만 봐도 성공의 크기를 가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불혹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항상 최고로 인정받아야 했고, 남다른 의미를 담은 컬렉션을 선보여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면서 우울증이 온 것.

여기에 무명시절 자신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패션계 인사 인사 이사벨라 블로의 죽음과 청천벽력 같은 에이즈 진단이 삶의 의지를 꺾어버렸다. 이런 고통스런 현실을 잊기 위해 무절제한 성생활과 약물 의존성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이야기의 과정은 `알렉산더 맥퀸: 광기와 매혹`에 자세히 담겨 있다. 이 책은 맥퀸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르면서 그의 개인사와 패션계 행보, 그의 작품에 얽힌 사회 문화적 맥락까지 두루 살핀다.

기자 출신인 저자 앤드루 윌슨은 이미 나와 있는 기사와 단행본, 맥퀸의 가족은 물론 동성 연인까지 만나 다양한 증언과 참고 자료를 확보했다. 어머니가 직접 조사해 정리한 맥퀸 가문의 계보를 비롯해 맥퀸이 어린 시절 당한 성적 학대, 각 컬렉션에 얽힌 뒷이야기 등도 엿볼 수 있다.

맥퀸은 인간의 어둡고 뒤틀린 부분에서 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매형에게 받은 성적 학대를 계기로 강인한 여성을 강조한 옷을 만들었고, 죽음의 의미와 상징성을 독창적인 콘셉트로 재현했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명작 `새`, 폴 들라로슈의 명화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 등 그에게 영감을 준 예술 작품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그의 패션세계를 짐작 할 수 있다.

저자는 그런 맥퀸을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감싸고 돌지도 않는다. 저자는 중립의 위치에서 인간 맥퀸을 철저하게 파헤친다. 맥퀸의 파격적인 디자인과 패션쇼를 둘러싼 찬사와 비판도 균형을 이룬다. 맥퀸을 다룬 최초의 한국어 평전인 이 책은 맥퀸의 어둠이 빚어 낸 현실과 패션에 투영한 이상향을 아우른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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