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천사들을 저에게 네례주신 것을 감사들입니다. 요즘 새상은 부모를 모른척하는 인간도 많은대, 저에 자식 육남매는 천사랍니다. 효성이 지극한답니다. 저의 자식들 겅강을 주시기를 간절이 바라옵니다. 하느님 저는 자식에게 빚이 많는 인간입니다. 부모노리도 제대로 못한 저에 죄를 사해주시옵어서. 소원을 이르워 주시기를 천번 만번 두 손 모와 비나이다.`

어느 날 엄마의 노트를 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용 줄 공책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 일기 같기도 고백 같기도 한 서툰 글들이 노트 한 권을 빼곡 채우고 있다. 어릴 적 장독대에서, 이른 아침 생일상 앞에서 들어본 적 있는 말들이다. 엄마는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글을 배웠고 틈날 때마다 이런 글을 쓴다. 귀로 듣던 엄마의 소원을 이제는 눈으로 본다.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비며 끊임없이 빌고 빌던 엄마의 소원,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엄마의 소원은 여전히 자식들의 건강과 행복, 그뿐이다.

틀린 글자 투성이, 어려운 낱말도 없으며 논리적이지도 않은 글이다. 하지만 읽는 사람을 곧바로 모성의 진실에 가 닿게 한다. 내 엄마의 글이라서 더 잘 감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뒤늦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어르신들이 써 놓은 서툰 글귀에 한번쯤 가슴 떨어본 적 있지 않은가.

글쓰기 강의를 하며 `어떤 글이 잘 쓴 글이냐` 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글에 대한 평가에도 명료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글에 등급을 매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하지만 문학은 기술이 아니고, 글 쓰는 사람은 기능공이 아니다. 글은 사람의 마음에 가 닿아 번지며 생동하는 유기체다. 애초부터 상위의 일자를 지향하는 등급 매기기 대상이 될 수 없다.

좋은 글은, 기교나 형식에 공들인 글이 아니다. 쓰려는 말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쓴 글이다. 자서전은 더욱 그렇다. 삶의 경험을 미화하고 포장해 멋지게 꾸며 쓴다 해도 독자는 그런 기교에 넘어가지 않는다. 독자의 반응을 너무 의식할 필요도 없겠지만, 진정 글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싶다면, 꾸밈없이 쓰고 정직하게 써야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 그렇다면 한 줄만 덧붙이자. 진실은 항상 당위 안에 있다.

마기영 수필가·대전시민대학 강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