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표시하는 `시, 분, 초`는 영어로 `hour, minute, second` 이다. 이 중에서 유독 second가 필자의 눈에 밟혔다. `두 번째`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어떻게 `초`가 됐을까?

유럽이 중세 암흑기를 지나고 있을 때 데모크리토스,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 그리스 과학전통은 중동의 학자들에 의해 계승된다. 그 중 알 비루니(973~1048)가 가장 유명하다. 그를 기념해 발행한 한 이란 우표에는 초상화 아래 열 개나 되는 직함이 적혀 있다. 물리학자, 측지학자, 천문학자, 역사학자, 식물학자, 수학자, 철학자, 인류학자. 그가 남긴 업적을 제목만 써도 기고에 허락된 지면을 반을 넘긴다. 한 예만 들면 측지학자로서 그가 지구 반지름을 측정해 얻는 값이 6321km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값과 단 1% 다르다.

40대에 천문학자로 변신한 알 비루니는 직접 제작한 사분의로 천체를 관측해 달력을 만들고 최초로 시간 단위를 60진법으로 체계화했다. 그가 사는 지역 관습을 따라 하루를 24로 나누어 hour(시간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hora에서 유래)라 했다. 1hour는 밥 먹는 시간, 일할 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처럼 인간 생활 리듬에 알맞은 시간 간격이다. 더 작은 단위가 사실상 필요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hour를 60으로 나눈 간격을 `작은`이라는 뜻을 가진 minute로 불렀다. Minute는 육안과 사분의로 별을 관측하면 구분할 수 있는 한계치이다. 그러나 알 비루니는 상상 속에서 계속 나누었다. Hour를 60으로 두 번 나누고 `second`, 세 번 나누고 `third`, 네 번은 `forth`라 했다. Forth는 무려 1/3600초다. 초 이하 단위 작명은 마치 멀지 않은 옛적 아이가 태어나면 일순(용)이, 이순(용)이, 삼순(용)이로 불렸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들처럼 조금 무성의하게 느껴진다. 이런 작명은 아마도 천체 운동을 관찰하는 기구인 사분의나 육분의가 각도기이기 때문에 각도기 눈금 매기는 법을 따른 것 같다. 각도기에는 오래전부터 한 바퀴를 360으로 나눈 도(degree)를 기본 눈금으로 매겼다. 서기 1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미가 처음으로 1도를 60진법으로 더 세밀하게 나누고 minute, second라 이름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대제국을 건설한 후 제국을 관리하기 위해 프톨레미에게 위·경도 좌표계를 만들도록 명한 것이다. 천문학자로서 알 비루니는 프톨레미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문득, 구현하기 불가능해 오직 개념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시간 간격에 그가 굳이 이름 붙인 이유가 궁금하다. 학자로서 호기심? 이름을 붙임으로써 얻는 의식의 확장? 후세에 그런 시계를 만들라는 동기부여?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성의 없는 작명이 조금 서운하다. 초침시계가 있는 시대였다면 분명 그는 더 우아한 이름을 `초`에 주었을 것이다. 그런 시계는 후에 발명된 기계식 시계가 갈릴레오 이후 진자시계로 변신한 16세기가 돼서 가능해진다. 진자시계는 나중에 더욱 진화해 지구 중력이 지역에 따라 다르고 자전주기가 일정치 않다는 것을 알아낸다. 불완전한 지구의 발견! 중동에서 계승 발전시킨 그리스 과학 정신의 강물이 서쪽으로 되돌아 흘러 르네상스로 꽃핀 결과이다.

현대에 초는 가장 중요한 기본 시간 단위(SI unit)가 되었다. 원자시계로 구현하는 초는 수백억 년에 단 1 초 틀릴 정도로 정확하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검증하고, 또 1 아토초 간격으로 시간을 분해해 자연현상을 들여다본다. 현대인에게 1 초는 너무나 긴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1 초보다 작은 시간을 10진법으로 밀리, 마이크로, 나노, 피코, 펨토, 아토, 젭토, 욕토 같이 예쁜 접두어를 붙여 읽는다. 이렇게나마 초의 작명에서 온 아쉬움을 달래어 본다.

<박창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표준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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